'오! 수정'을 보면서 문득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자서전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알튀세르는 오래 지속될 미래를 위해 기억의 강으로 빠져들었지요. 그는 어린 시절로부터 아내를 살해하기까지 아주 작은 기억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시간을 쪼개고 찢고 부수었습니다. 이토록 집요한 정신분석을 통해, 미래의 나를 발견하려면 과거의 나부터 발견해야 한다는 명제와 만납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부터 시작하여 '강원도의 힘'을 거쳐 '오! 수정'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시선에 놓인 평범함을 참신하고 독특한 언어로 경이롭게 포착한 신비한 영화'라는 동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선정 이유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홍감독님은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이라는 찬사 속에서 수많은 평문들이 발표되었지요. 저는 그 평문들에 시비를 걸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홍감독님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웃기는 짜장'의 일원으로서 한 가지 안타까움을 전하고자 합니다. 홍감독님께서도 벌써부터 알고 계실 비애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오! 수정'의 등장인물들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추억도 약속된 땅에 대한 희망도 없는 하나같이 '웃기는 짜장'들입니다. 순간순간 불안을 벗어던지기 위해 감정을 부풀리기도 하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한 의지가 되지 못하지요. 그들의 삶은 때때로 무책임합니다. 삶의 기반을 흔드는 결정적인 충격만 아니라면, 키스를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사람을 죽여도 좋고 죽이지 않아도 좋은 것이지요. 수정(이은주)도 영수(문성근)도 재훈(정보석)도 언제나 자신에게만 골똘한 인간입니다. 함께 있어도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는 시선들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런 식의 말과 행동을 순간순간 합리화합니다. 그 합리화의 근거는 다름 아니라 기억이라는 놈이지요.
수정과 재훈의 기억을 대비시켜 보여주면서, 감독님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지금의 나가 과거의 한 순간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통해 합일의 어려움이 드러난다고 파악할 수도 있겠고 더 나아가 모든 만남은 나 혼자만의 만남이라고 슬퍼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쩌지 못하는 거대하고 단단한 세계 앞에서 무기력하게 백기를 흔드는 인간들만 보입니다. 홍감독님께서 만드신 세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놀랍게도 이 세계에 순응합니다.
순응이 아니라구요? 물론 그런 입장을 취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저마다의 바위를 굴리더라도 산봉우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세계인식은 분명 비극적입니다. 굴려도 굴려도 다시 굴러 떨어질 따름이지요. 남는 것은 그 세계를 벗어나 자살하든가 아니면 그 세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또 하나의 시지프로 일상이라는 바위를 흔드는 것 뿐입니다.
연애의 끝은 죽음 아니면 결혼이라고 했던가요? 그러나 결혼이라는 선택은 잠시 죽음을 유보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수정이 재훈을 만나러 호텔로 가든 가지 않든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부분의 정사는 또 하나의 코메디일 뿐이겠지요.
자신의 기억에 속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기억이란 세계 앞의 무기력을 보상하는 작은 변명거리일 뿐이겠지요. 이제야 저는 알뛰세르의 자살이 이해가 됩니다. 죽음을 향한 설레임이 어디서부터 오는가도 알겠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홍감독님의 자살일지를 엿보고 싶습니다.
소설가 김탁환 (건양대 교수)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