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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창의 NGO 이야기]함께하는 연대를 위하여

입력 | 2000-11-15 10:49:00


▼'연대'는 필요할까?▼

총선연대의 활동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연대체 구성에 관한 논란이 분분할 때 50여명이 약간 넘는 상근운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논의되고 있는 연대체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화두로 의견개진을 해보는 자리, 일컬어 산중대회라 불리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어쩌면 그동안은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발언이 있었다.

'시민운동에서 과연 '연대'가 필요할까?'라는 것이었다. 시민운동의 기본적인 정신이 다양성이라면 '연대'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 그 조직을 '대표'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생기고 그 사람이나 단체가 마치 시민운동 전체를 '대표'하는 모습을 갖게 되면서 시민운동 본래의 모습인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의견개진의 자리라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의견도 있다는 것은 '연대'에 관한 한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꺼리'를 준 셈이었다.

최근의 개혁연대에 관한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개혁연대가 총선연대와 다른 것은 그것이 구성될 때 시민운동의 '일상적' 대표가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일상적 대표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합의가 필요하고 개별단체의 다양한 활동을 일정하게 제한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작지 않다. 과연 연대는 필요할까?

미리 결론을 내린다면 본인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공동체'라면 연대라는 것을 통해 훈련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겠는가? 뿐만아니라 한 단체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변화가 힘을 모아 엮어 움직일 때 가능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물음이 갖는 배경에 대해서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시민운동에서의 '연대'활동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를 둘러 싼 논란들▼

시민운동 내부에는 오래 전부터 '연대'활동에 대한 자조적인 목소리가 있었다. 소위 '등'단체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연합 같은 메이져단체들의 들러리를 서는 작은 단체들을 일컬어 '등'단체라 한다. 여러 단체가 함께 일을 하고도 경실련, 참여연대 등 00개 단체라고 언론에 나는 경우인데 더구나 실제 중심적인 역할을 작은 단체가 한 경우에는 그 설움이 더하다.

연대활동에 회의를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등'단체라는 자조의 목소리는 오래된 것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연대'의 민주주의의 문제가 있다.

일을 하고도 등단체로 설움받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메이져단체들이 연대활동의 중심에서 지역과 작은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보다 자신들의 견해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색칠해 나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다. 가까이는 총선연대 활동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멀리는 공선협과 시민협의 활동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꼭 집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산중대회의 의문은 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누가, 어느 단체가 시민운동을 대표하는가?'의 문제이자, 참가하는 단체들로부터 연대의 범위와 내용에 대해 어떻게 위임받는가의 문제이다.

물론 이끄는 쪽도 당연히 할말이 있다. 이름만 걸어 놓고 회의 한 번 참석 안하는 단체들에 대해 대표성이나 입장에 대해 할말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장 결정하고 집행해야 하는 데 이미 동의한 사안들에 대해 언제 다시 논의하겠는가 말이다. 단체연명으로 내도 언론에서 주요단체 중심으로 보도하는 것이야 그 단체들의 잘못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연대'에 관한 시민운동 내부의 논란이 단지 주요단체외의 나머지 단체들의 소외에 관한 문제에 그치고 만다면 굳이 '연대'가 필요하겠는가? 다행히 최근 개혁연대에 관한 논의는 '등' 단체들의 소외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개혁연대가 추구하는 개혁의 내용과 범위, 연대할 단체들의 소위 개혁성에 관한 문제제기 등 만드려고 하는 연대기구의 내용과 형식을 둘러 싼 논의가 만만치 않게 진행되어 왔다.

진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연대'활동의 변화, 어디로?▼

시민운동에서 본격적인 연대활동의 경험을 연 것은 아무래도 공선협을 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의 창립초기이기도 했던 91년 결성된 공선협은 공명선거라는 단일한 이슈로 경실련, YMCA, 흥사단, 노총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기 이전이라 경실련 외에는 전통적인 시민단체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활동이 거듭되면서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단체들 중심으로 중심축이 이전되어 가기는 했으나 당시의 공선협은 드러난 활동의 양태로 볼 때는 단체중심이라기 보다 사회의 원로들이 중심이 되고 발의한 경실련이 사무국의 중심이 된 연대 활동이었다.

91년의 공선협이 연대활동의 시작을 알렸다고는 하나 본격적인 단체 연대라 보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두 번의 공선협의 활동을 이어 본격적인 연대활동을 위해 정사협이 구성되기는 했으나 YMCA가 참여하지 않음으로 해서 연대기구로서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주요단체는 경실련과 흥사단 등만 남아 부정부패척결운동 등을 전개했으나 결국 시민협으로 발전적 해소를 하게 된다. 시민운동의 발전을 반영하여 환경련, 녹색교통운동, 녹색연합 등이 가세한 시민협은 당시로서는 시민운동의 명실상부한 연대기구였다. 시민협은 시민단체공동신년하례회, 공동정책협의회, 선거시기 시민단체 공동정책캠페인 등 시민단체 공동의 활동을 조직하여 시민운동 전체를 지원하는 역할을 일정하게 담당하였다.

어쨌든 총선연대 활동으로 시민단체의 연대의 중심축이 변화하기 전까지 내부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시민협은 시민단체 전체의 연대기구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성격 때문에 늘 두 가지 서로 다른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보다 개혁적인 시민운동 전체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시민협이 소속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간혹 시민협 독자의 성명이나 독자적인 활동이 전개되기도 했으나 소속단체들의 활동과 중복된다 하여 제동이 걸리곤 하였다. 반대로 시민단체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여 공동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상존하였다.

따라서 사회적 현안들이나 이슈를 중심으로 한 연대는 별개로 진행되었다. 각종 환경관련 이슈나 부정부패에 관한 이슈에 시민단체들이 연명으로 공동대응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연대활동을 제안한 단체가 사실상 모든 일을 하고 나머지 단체들은 이름만 거는 일이 이같은 연대활동의 경험이었다. 말이 연대지 실상은 한 단체의 일이라는 냉소들이 시민단체들 내부에도 제기되기 시작할 무렵 연대활동에는 두가지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나는 국정감사시민연대의 경험을 이어 받은 총선연대 활동이다. 지역조직을 포함하여 참여한 단체들이 실무자를 파견하고 집행위를 구성하고 돈을 나누어 내고 역할도 나누어 맡는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행권네트웍 이후 예산감시네트웍, 판공비공개네트웍 등 네트웍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연대활동이 그것이다.

개혁연대와 관련한 논란과 연대활동에 관한 이 새로운 경험들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흐름들이다. 공선협이나 시민협과 같은 연대활동이나 사안별로 이름만 걸고 모여 있는 연대활동과는 다른 경험들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성장한 단체를 중심으로 연대활동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고 참여하는 단체들 모두 자신의 역할이 있으며 동의하는 사업내용을 중심으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앙에 의한 지역조직의 참가가 아니라 지역조직 조차 자신의 역할이 뚜렷한 내용을 중심으로 연대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향후의 연대활동은 이같은 변화를 보다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연대라는 것이 서로를 가르고 어느 한 쪽을 배제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다수를 모으고 그럼으로서 하고자 하는 일과 생각하는 일을 널리 알리고 힘을 모으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동안 연대활동에서 지녀왔던 좋지 않은 태도도 변화해야 한다.

이름만 걸어 놓고 소식만 받아 보는 식의 활동을 지양하고, 참여했으면 분명히 자신의 역할을 담당할 것 중심적인 단체의 활동을 인정하고 도와 주는 것, 의사결정과정에서 작은 단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등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많다.

새로이 구성하려는 연대기구의 성격을 둘러 싼 논의가 아직도 본격적인 진행이 되고 있지 못하다. 연대기구의 성격과 형식에 대해 공감대가 분명하지 않았던 탓이다. 알게 모르게 시민협의 존재도 고려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폭넓은 연대를 만들고 지금까지의 연대활동의 발전을 담아내는 연대의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연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넓은 문을 만들어야 할 때다.

하승창(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