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전을 앞둔 달콤한 휴식.'
탤런트 김정은은 요즘 어느 때보다 달콤한 여가를 즐기고 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여성 전투기 정비사 역을 맡아 고생 깨나 했던 MBC 특집 드라마 도 지난달 말 촬영이 끝나 이제는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보면 된다. 현재의 방송활동은 KBS 라디오 진행과 SBS 의 진행뿐. 밤을 하얗게 새고 하루 종일 대기해야 하는 드라마 촬영은 당분간 그녀 스케줄에는 없다.
"생각해 보니까 98년 겨울 촬영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느긋하게 쉬어본 적이 없어요. 며칠 좀 쉰다 싶으면 바로 드라마니, CF니, MC니 해서 바로 일이 들어오더라구요. 이렇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정말 2년만이에요."
덕분에 친구들 만나 수다 떨고, 컴퓨터로 팬들과 채팅하면서 여분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마음부터 넉넉한 휴식에 모처럼 어머니가 챙겨준 보약도 먹어서 그런지 확실히 그녀는 생기가 넘쳤다.
"그런데 사람 마음 참 간사하죠. 쉬니까 드라마 하고 싶은 것 있죠. 남들이 드라마 출연하는 이야기만 들으면 몸에서 열이 막 난다니까요."
드라마에서 어수선한 성격에 실속 없이 설치는 인물이나 아니면 새침데기 악역을 많이 맡았던 그녀는 종종 실생활에서도 극중과 비슷할 것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사실 드라마보다 더 그녀의 인기를 높여주었다는 모 휴대폰 서비스 CF에서 보여준 모습은 개그맨 뺨칠 정도로 코믹하다.
그러나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벼운 혼란에 빠진다. 어수선하기는커녕 차분하고 정감있게 말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생각에 대해 간결하면서 요령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이 여인이 과연 CF에서 절구공이를 돌리던 그 사람 맞나?'라는 의문에 쌓인다.
"실제로는 드라마만큼 털털한 성격이 못돼요. 물론 남 앞에서 푼수짓 하면서 웃기는 체질도 아니구요. 연기하면서 바뀐 것 같아요."
그러면 드라마나 CF에서 보여준 그녀의 능청스러울 정도로 코믹한 모습은 무엇일까?
"저는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만드는 웃음은 싫어요. 제가 재미있고 즐거울 때 저절로 흥이 나서 연기가 되거든요. 연기하는 사람이 즐거울 때, 보는 사람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로 연기를 한지 3년 반이 된 그녀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신인 연기자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연기에 입문했을 때 꿈꾸었던 것은 우아하고 가련한 여주인공.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예쁘게 눈물 흘리는 공주'가 꿈이었다.
하지만 우아한 공주를 꿈꾸던 김정은이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드라마 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극중에 정신병을 앓는 문순영역을 맡은 그녀는 허리까지 곱게 길렀던 머리를 까까머리로 삭발했다.
"에 출연하면서 마음 속에 쌓아둔 벽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는 큰 딸이 머리 자른다고 크게 반대를 하셨는데, 저는 연기를 하면서 그렇게 몰입한 적은 그 이후로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에서 의사로 나온 차태현과 코믹하면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역어낸 김정은의 연기는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같은 역할을 하면서 주인공 커플인 안재욱-김희선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CF에서 각광받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현실적인 성과보다 자신이 연기자로서 새롭게 눈을 뜬 '터닝 포인트'를 찾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자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달콤한 '휴가'를 즐기고 있지만, 이번 휴식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전망이다. 벌써 SBS 새 미니시리즈 에서 그녀에게 손짓하고 있고, 내년에는 100회 분량의 대하사극 에 출연하는 것이 이미 내정된 상태. 이중 의 김재형 PD가 연출을 맡아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에서는 연기생활 처음으로 사극 연기에 도전한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재기 넘친 기생 옥매향. 첫 사극 배역치고는 꽤 독특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점이 더 좋다고 한다.
"처음 해보는 역할이라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크게 고민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이번이 사극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돼요."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경제적으로 수입도 높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의외로 선선히 인정을 했다. 대개의 연예인들이 이런 질문에 대해 얼버무리는데 반해 그녀는 "확실히 남보다 많이 버는 것은 사실이에요. 가끔 저도 놀래니까요"라며 '고수익자'임을 확실히 시인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수입이 노력하지 않고 운이 좋아 버는 '불로소득'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기 생각을 밝혔다.
"제가 이런 위치에 올라오게 되기까지 흘린 많은 눈물과 혹독한 스트레스, 3~4일씩 밤을 새는 노력들이 무시될 때 화가 나요. 타이슨이나 홀리필드가 마냥 놀다가 주먹 한 방으로 KO승을 거두고 수천만 달러씩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왜 연기자들에게도 그런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죠."
때론 야무지고, 때론 상냥하고, 또 어떤 때는 발랄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을 가진 그녀에게서 앞으로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천생 연기자'의 모습을 본다.
김재범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