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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살아보니]류밍량/한글 교육강좌 있었으면

입력 | 2000-11-15 18:57:00


20년 전 한국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중국어나 영문해석이 붙어 있는 마땅한 교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한국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무조건 외우는 방법을 택했다. 당시 지도교수는 한국의 문학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만약 외국인이 한국 소설이나 시를 깊이 이해하면 한국작가도 반드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왜냐 하면 당시 한국문학이 한글의 특수성 때문에 국제문단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심지어 80년대까지도 서울의 서점에서 외국인이 전문적으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교재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난해 다시 한국에 와보니 놀랍게도 서울의 서점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글 교재가 수없이 나와 있었다. 외국인이 쉽게 한글을 터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모두 전문가의 손을 거쳐 특별히 기획된 교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도 20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다시 말해 한국이 전보다 훨씬 국제화됐다고 볼 수 있다. 머지 않아 한국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한국이 어학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보다 신속하게 국제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자녀의 교육문제에 큰 어려움이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자녀들은 대체로 외국인 학교에 다닌다. 이들 학교의 학비가 너무 비싸 일반 외국인 가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미국학교에서는 영어를 모르는 외국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학교에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학생들은 위한 일종의 KSL(Korean as Second Language)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외국어린이는 학교교육에 적응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외교관들도 자녀교육 문제로 한국 근무를 주저하고 있다. 이런 일은 한국에도 매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 있는 몇몇 외국인 학교에는 매년 1000여명이 입학하고 있다. 만약 외국인 자녀를 위한 전문학교나 KSL프로그램을 시행하면 1000여명이나 되는 외국인 자녀들을 쉽게 한국의 교육체계에 흡수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접하면 10년 동안 1만여명의 외국인을 친한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된 원인이 바로 매년 수많은 외국인 자녀들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미국의 문화와 사상을 접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훗날 성인이 돼서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돼 어떠한 일에 종사하든지간에 미국의 이념과 정책을 쉽게 이해하게 될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일본도 수년 전부터 ESL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수준과 국제적 명성으로 볼 때 KSL제도는 시행해 볼만한 투자라고 본다.

이밖에 또 한가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은 한국의 도로표지판을 들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로표지판은 운전자에게 간단하고 명확하게 도로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제외한 다른 도로의 표지판은 일정한 규격과 표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도로와 지리에 익숙한 운전자들만 알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외국인 운전자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교통체증문제는 심각한 상태다. 도로표지판은 도로 소통에 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에너지 낭비는 물론 교통체증을 가중시키고 있다.

나는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휴일에 나들이 운전을 주저하고 있다. 교통체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도로와 해당지역의 표지판이 달라 헤매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매년 많은 예산을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를 위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도로표지판이야 말로 관광여행의 품질향상은 물론 한국의 국제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류밍량(주한 대만대표부 공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