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천은 교통이 좋다. 경부선 철로가 지나고, 경부고속도로가 지난다. 동서로 뻗은 3번 국도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4번 국도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통보다 더 좋은 게 있다. 김천 물이다.
물이 좋아, 샘에서 금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 금샘이 금지천(金之泉)인데, 김천(金泉)이라는 이름도 그 샘에서 나왔다. 400년 전에 이 샘물 맛을 본 중국 장수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파병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다. 그는 이 샘물 맛이 중국 금릉(남경)에 있는 과하천(過夏泉) 물맛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 뒤로 금지천은 과하천으로 불렸다.
현재 김천시 남산동에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28호로 지정된 과하천이 있다. 시내를 내려다보는 산 중턱에 민가로 둘러싸여 있는데, 사용되지는 않지만 비온 뒤끝인지 물은 많고 맑았다. 그 샘을 둘러싸고 있는 담벽에는 ‘金陵酒泉’(금릉주천)이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1882년에 세워졌는데, 김천을 금릉이라 부르고 과하천을 주천(酒泉)이라 불렀다는 얘기다. 중국 금릉의 삼산이수(三山二水) 지형을 닮아서 김천을 금릉이라 불렀고, 과하천 물로 빚은 술맛이 기막히게 좋아서 주천(酒泉), 곧 술샘이라 불렀다 한다. 그 과하천 물로 빚은 술이, 여름을 넘긴다는 과하주(過夏酒)다. 과하주는 조선시대에 널리 빚어 먹었다. ‘규곤시의방’(閨 是議方)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김천의 과하주가 특히 유명했다. 1928년에는 일본인이 김천양조주식회사를 설립해 과하주를 빚었는데, 탁주 약주 소주 재제주(再製酒) 네 종류가 있었다. 그런데 해방된 뒤로 과하주의 명맥이 끊겨버렸다.
1980년대 들어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새롭게 일었다. 그 복원 작업에 소매를 걷어붙인 사람이 당시 문화원장이던 송재성씨(1912~98)였다. 그는 일제시대부터 치과의사를 했는데, 그의 병원 맞은편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김천양조주식회사가 있었다. 처남인 조종호씨가 그 양조장의 상무로 근무하고 있어서 송씨는 과하주 제조 공정을 익히 보아왔다. 그런 눈썰미를 바탕으로 송씨는 예전 김천양조주식회사에서 근무하던 기술자 조무성씨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1987년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과하주 제조 기능 보유자가 되었다.
지금은 송재성씨의 둘째아들 강호씨(61)가 뒤를 잇고 있다. 과하주 공장은 직지사 입구에서 갈라지는 977번 지방도 초입에 있다. 소규모 단위로 제조가 이뤄지는데, 16도 약주를 생산하다가 지난해부터 30도 약소주를 빚었고 올 가을부터는 23도 술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16도 과하주는 찹쌀로 빚은 순수한 곡주다.
제조 방법을 살펴보자. 누룩과 찹쌀을 넣어 밑술을 담근다. 누룩은 상주 곡자 공장에서 만든 것을 쓴다. 3일 숙성시킨 뒤, 잘 식힌 찹쌀 고두밥과 물을 잡아 덧술을 만든다. 이때 원료의 비율은 찹쌀 80kg에 물 80ℓ를 넣고 누룩은 20kg 정도 넣는다. 누룩이 10%쯤 들어가니 적게 쓰는 편이다.
덧술은 섭씨 18도 실내에서 숙성시킨다. 30일이 지나면 여과기로 술지게미를 걸러낸 뒤에 숙성실로 옮긴다. 100일이 지나면 미세한 앙금이 가라앉아 술이 부드러워지고 때깔도 투명하게 빛날 정도로 좋아진다. 이렇게 제조된 16도 약주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된 과하주다.
그런데 옛 사람들은 용수를 박아 걸러낸 덧술의 술지게미를 그냥 버리지 않았다. 술지게미에 소주를 부었다가 며칠 숙성시킨 뒤 다시 용수를 박아 누룩 냄새가 밴 소주를 걸러 먹었다.
통상적으로 증류소주가 약주보다 고급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하주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먼저 약주를 걸러먹고 나서, 남은 술지게미에 독한 소주를 부어서 재차 걸러먹었던 것이다. 이렇게 걸러먹은 술을 재성주(再成酒)라고 부르는데, 이 술이 명실상부하게 더운 여름을 넘길 수 있는 과하주의 본령이다.
누룩으로 빚은 약주는 20도 넘는 것을 뽑기가 어렵다. 20도 이하의 술은 살균처리를 하더라도 6개월이 지나면 변질된다. 고로 모든 약주는 변질된다. 변질되지 않는 약주 맛을 보려면 20도 이상의 술이어야 한다. 소주와 결합한 과하주는 그래서 생겨났다. 빚어먹는 방법이 세 가지쯤 된다.
첫번째는 앞서 말했듯이 술지게미에 소주를 부어 걸러내는 방법이다.
두번째가 처음부터 누룩과 찹쌀에 소주를 부어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세무감독국 기사가 쓴 ‘주조독본’(酒造讀本)에 소개돼 있다. 찹쌀 1되 5홉을 쪄서 냉각시킨 것을 빻은 누룩 4홉, 엿기름 4홉, 소주 4되와 함께 항아리에 담고 충분히 휘저은 뒤 뚜껑을 덮어 숙성시킨다. 20일쯤 지나서 용수를 박아 술을 떠낸다. 남은 술지게미에 다시 소주를 2되 넣고 잘 저어 4일쯤 지난 뒤에 다시 용수를 박아 술을 떠낸다. 첫술과 두번째 술을 섞어서 마시는데, 술 도수는 30도 내외로 한여름에도 변질될 우려가 없다.
세번째는 16도 약주를 45도 증류소주와 섞어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 30도 내외의 약주 냄새가 나는 소주가 된다. 이 방법은 현재 과하주 제조장에서 쓰고 있다. 가장 번거로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방법이다.
비록 과하주는 과하천에서 유래한 이름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빚어 명실상부하게 여름에 강한 술이 되었다. 즉 한여름에도 변질될 우려 없이 약주 맛을 즐길 수가 있는 술은 과하주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제조 방식은 포도주에도 있다. 발효한 와인에 증류한 브랜디를 첨가하여 만드는 강화와인이 그것인데, 스페인의 셰리, 포르투갈의 포트, 이탈리아의 베르무트가 그에 속한다.
과하주 제조장에서 빚는 30도짜리 과하주는 노릿한 빛깔이 돌고, 은은한 약주 냄새를 지니고 있다.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날카로운 향과 모나지 않는 약주 맛이 담겨 있으니, 도수가 낮다고 약주를 무시했던 사람들은 한번 대결해 볼 만한 술이다.
한여름에 김천을 찾으면 과하주만큼이나 지나칠 수 없는 게, 직지사 계곡과 청암사 불영동천 계곡이다. 산이 높아 물이 맑고 계곡도 깊다. 청암사에서 김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들어선 구성면 상원리 원터, 연안 이씨 종택 마을에서 뜻밖의 진경을 보았다. 200년 된 이층 누각 아래에 동네 노인들이 무리지어 한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누각 아래 400년 된 연못에 가득 덮인 초록 개구리밥 위에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떨어져 이룬 물살 무늬가 감동적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이렇듯 뜻밖의 만남에 있다.
허시명(여행칼럼니스트)storyf@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