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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의 풍류 맛기행]전주 비빔밥

입력 | 2000-11-17 13:43:00


비빔밥은 혀끝이 살아 움직이면서 얼얼하고 달착지근한 5미(味)가 종합되어 나오는 맛이 일품이다. ‘전주 비빔밥’이 부드럽고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음식은 깡통 속으로 들어가면서 맛과 멋이 죽는다. 그래서 계절음식이 따로 없다. 그러나 패스트푸드화로 갈 수 없는 음식이 있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 ‘주체음식’이요, 식단 혁명에서 최후로 완성된 음식인 ‘전주 비빔밥’이다. 또한 ‘말고 비비는 것’이 우리 음식의 특징이라면 이 비빔밥의 유래만 해도 국물에 밥을 마는 습속에서 비롯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유래를 ‘들밥’에서 또는 오신채나 신인공식(伸人供食)에서 왔다고 본다. 제주 음식에서는 ‘걸명’이고 남도 음식에서는 ‘사물’(捨物)이다.

◇얼얼하고 달착지근한 ‘5味’

특히 전주 비빔밥이 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전주팔미(全州八味) 중 서목태(鼠目太)라 부르는 쥐눈콩과 함께 오목대(五木合·완산구 교동)에서 나는 녹두로 빚은 황포묵에 기인한다. 여기에다 맛좋은 고추장 참기름, 그리고 계절 따라 나는 푸성귀를 고명으로 얹는 신선함이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시사나 절사음식으로도 딱 맞는다. 이 비빔밥 한 숟갈에다 ‘열무김치 들어간다. 아구리 딱딱 벌려라’는 이 지방 구전 민요처럼 열무김치를 걸치는 맛이라니!

또 황포묵만 해도 잔치상의 술안주로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기호식품이었다. 녹두묵은 그냥 두루치기면 청포묵, 치잣물을 들이면 황포묵이 되는데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동학혁명 때 널리 유행했던 노래에서 보듯 바로 그 청포장수란 묵장수이며 동시에 전봉준을 메타시한 노래다.

이 황포묵과 또 특별한 맛을 갖춘 것이 콩나물이다. 아스파라긴산으로 피로와 속앓이를 풀어주는 콩나물만 해도 30여가지. 그 콩들 중 지금은 임실의 쥐눈콩만이 유독 나물콩으로 이름나 있다. 이는 요즘 심장병 발작, 탈모증을 일으키는 ‘허마인’이라는 농약으로 길러내는 콩나물이 아니라 외뿌리도 살갑기 이를 데 없는 콩나물이다. 전주 해장국 골목집이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며, 모주 한잔을 살짝 얹으면 그 맛에 반해 줄을 서지 않을 수밖에 없다.

가나다라 강낭콩 / 손님온다 까치콩 / 하나 둘 다섯콩 / 흥부네집 제비콩 / 우리집 쥐눈콩

이는 네모상에서 질금(질음, 길음) 콩을 고르면서 부르는 노래다. 또 콩나물을 기르는 시암물(샘물)도 특별해서 전주의 사정공, 자만동 녹두포의 물이라야 했다. 감로수를 먹고 자란 콩나물은 그 성정 또한 보드랍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주에 가면 공해 없는 이런 콩나물이 나온다. 감자탕을 끓이거나 뼈다구 해장국을 끓일 때도 그 맛이 또한 순후하다. 내피감각과 외피감각을 동시에 흔들어 주는 우리말 ‘시원하다’는 말은 영어에도 없다.

그래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은 익빔(익힌 쇠고기)이든, 생빔(생고기)이든 속앓이를 안고 ‘비빔밥집 콩나물국’을 찾게 된다. 대물림으로 이름난 ‘한국집’(063-284-0086)을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주 비빕밥은 전주부사(全州府史)의 기록대로 이 고장의 풍토병 때문에 나온 음식이라지만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 또한 순창 고추장을 설명하면서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맛에 감탄했다는 말에도 억지가 있다. 우리 식탁의 3차 혁명은 고추의 전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우리 입맛에 너무나 잘 ‘앵겨’ 그 신선함 때문에 퓨전 식탁에 갈 수 없는 음식이며, 최후까지 남을 오랜 민족 경험에서 온 귀납적 음식임에 틀림없다.

송수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