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의 사랑을 위하여 / 쟉클린 드 로미이, 쟝 피에르 베르낭 펴냄 / 바야르 출판사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문학은 중세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예술을 통해 끝임없이 반복되는 주제이며 소재이다. 고대문화를 부활한 르네상스시대에는 물론, 중세에도 신들간의 싸움과 사랑을 다룬 신화와 트로이 전쟁 등 고대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중세 고유의 이야기인 아더왕의 전설 등과 더불어 나왔다. 신화는 17세기의 고전주의 희곡과 예술에서도 중요한 소재였고, 현대 작품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양에서 고대 문화의 중요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신화와 고대사를 주제로 한 수많은 조각과 미술품들일 것이다.
이 막대한 문화 유산의 보고(寶庫)를 이해하고 친밀하게 할 수 있는 열쇠는 고대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교육이다. 그런데 2000년 전에 사용된 이들 고대어는 이미 죽은 언어라 실제 생활에 도움이 안되고, 경제적인 효용이 없다는 이유로 20세기 후반부터 학교 교육에서 경시되어 왔다. 특히 이 언어들은 오랫동안 서양문화를 지배했던 교회를 상기시키고, 또 여유있는 특수층의 향유물로 인식되어 이 언어들의 교육은 현대적 진보 평등 사상에 어긋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특수층만이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도록 할 때 오히려 문화를 소수의 전용물로 만든다고 ‘그리스어의 사랑을 위하여’는 그 오류를 지적한다.
이 책은 올 프랑스 문교부 개혁 정책으로 더욱 큰 위기를 맞을지도 모를 고대어, 특히 그리스어 교육을 지지하기 위하여 프랑스 한림원 회원인 쟉클린 드 로미이와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명예교수 쟝 피에르 베르낭, 원로학자 두 분이 뜻을 함께 한 결실이다. 이들은 학생시절 고대 그리스어를 배운 약 30여명의 각계 유명 인사들과 학생들로부터 그들을 감동시킨 고대 그리스어 작품의 한 구절과 감상들을 모았다. 2800년 전에 쓰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디세이’, 역사가 헤로도테스, 극작가 소포클레스와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기원전 4세기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등의 작품과 사상이 현대의 삶에 지혜를 터득하는데 중요했으며, 인생을 풍요롭게 했고, 또한 과학 의학 등 그리스 문학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이책은 보여준다. 2000년도 더 지난, 사어가 된 고대 그리스 글에 대한 사랑을 위해 쓰여진 이 책은, 한문으로 쓰인 가까운 100년 전 조상들의 작품조차 읽기 힘들어하는 우리에겐 더욱 심각한 경고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