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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박영숙/남의 아이 잘 키우는 여자

입력 | 2000-11-19 18:36:00


한국 사람들은 공과 사를 잘 분별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들의 불행에 취해 남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난 5년 동안 골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슴을 졸이며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이라는 공직과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수양부모협회장 일을 병행했다.

내가 마음놓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공직을 병행하기 위해 일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격려를 보내주었다. 사실 나는 새로운 도전과 훨씬 많은 봉급 때문에 자리를 옮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수양아동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느라 진 적지 않은 빚을 퇴직금으로 처리하기 위해 18년 동안 다닌 직장을 떠난 것이다.

▼행복 사회 환원위해 시작▼

80년대 초 20대 후반의 나이에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오지수당을 받을 정도였다. 80년대 말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외국인 방문객이 줄을 이었고 다양한 행사가 끊일 줄 몰랐다. 내 일도 점점 바빠지기만 했다.

그러나 나이 40이 되면 혼자만 누려오던 작은 행복과 부를 사회에 돌려주는 외국여성들처럼 나도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버려진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친아들과 함께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남의 아이 잘 키우는 여자’라는 소문이 나자 아이들이 속절없이 늘어나던 그 무렵 외환위기가 닥쳤다. 퇴근할 때 대사관 정문을 나서기가 무서웠다. 오늘은 몇 명이 버려져 있을까? 수십 명의 맡겨진 아이들을 동생, 친척, 친구의 집에 떠맡겨 키우는 사이에 한국수양부모협회가 탄생했다. 나는 서서히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으로, 수양부모협회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나이 45세. 이 나이에 새로운 도전은 무분별한 일이니 그럭저럭 생을 아름답게 마감할 생각이나 하라는 무수한 조언을 뒤로 하고, 나태한 잉여시간을 먹고 배불리는 데 쓰기를 거부하며 나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 것이다.

버려지는 정상 아동들이 대규모 시설에 수용돼 아동인권 침해국이라는 비난을 받는 나라에서, 수양부모운동을 통해 아동복지국가로 자리매김되도록 하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화려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리던 손으로 아이들 똥오줌을 받아내는 투박한 손의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일이지만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는다.

어릴 때 아버지는 경북 구미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고 어머니는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전답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어느 해 가뭄이 몹시 심했을 때의 일이다. 도랑물을 퍼다가 논바닥을 적셔놓으면 바로 밑의 논 주인이 어느새 물꼬를 밑으로 터놓아 망연자실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새벽 현장을 잡아 나이든 농부를 물고 늘어졌다. 남자들이 어머니를 에워싸는 것을 보고 열살도 안된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위험을 감지한 나는 겁에 질려 어머니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그만하자고 보챘다. 그러나 어머니는 죽음을 각오한 태세였고 결국 농부는 어머니 논에 물을 대주었다.

▼내 아들이 이어받았으면▼

대구로 이사한 뒤에는 어머니와 장보러 가는 길이 악몽이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꼬질꼬질하게 때묻은 옷을 입은 아줌마들과 고등어 한 마리를 놓고 값을 깎아대면 나는 그것이 창피해 먼 산을 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요즈음 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똑같은 짓을 한다. 아들 앞에서 물건값도 깎아보고, ‘실례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무례하게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고함도 친다. 아들은 “유 메이크 미 쪽팔려”(엄마는 나를 쪽팔리게 해)라고 헐떡대며 멀리 숨어 있다가 나중에야 서서히 내 옆에 선다.

나는 지금의 이 집념과 용기, 그리고 쉽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 순간을 무쇠의 마음으로 다잡아 주는 힘이 어머니로부터 왔음을 안다. 나는 이 용기와 끈기를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남의 아이 키우는 일을 아들이 지속적으로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영숙(한국수양부모협회장·주한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