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강 상류 나바리강 일대 자연형 제방건축
일본 오사카(大板) 동쪽 인구 8만5000명의 소도시인 나바리(名張)시에서는 매달 셋째 금요일마다 곳곳에 팻말이 붙는다.
‘폐식용유 수거’라고 쓰인 이 팻말이 동네 구멍가게나 소형트럭에 붙어있으면 주민들은 쓰고 남은 식용유를 갖다 버리고 기름으로 만든 무공해 비누를 사간다.
하천을 기름으로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의 하나다.
91년부터 시작된 이 운동을 이끌고 있는 요시이 마사오(吉井正男)씨는 “시 전체 2만7000세대중 2500명이 회원이니 10% 이상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셈”이라며 “한달을 못기다려 미리 폐유를 가져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참여 열기가 높다”고 말했다.
오사카를 지나는 요도(淀)강의 상류인 이곳은 유난히 강과 산에 대한 애착이 높다. 이는 이곳이 홍수와 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던 지역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요도강 모임’의 카와카미 아키라(川上聰)사무국장은 “2차 세계대전때 울창하던 나무가 다 베어진뒤에는 태풍이 불어올때마다 대홍수가 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댐을 만들고, 빨리 자라는 침엽수림을 조성하는 등 치수사업을 벌였지만 콘크리트로 단장된 하천은 자연정화기능을 잃게 됐습니다. 이제 다시 자연친화적 하천관리에 주민들이 앞장서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과 마찬가지로 6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주택단지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녹지는 줄어들고 오염원은 늘어나 하천의 오염은 가속화했다. 이 때 카와카미씨가 주축이 돼 벌인 ‘주민참여 수질검사’는 환경오염을 자각하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나바리강 곳곳에는 새로운 제방공사가 한창이다. 밋밋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마치 자연석을 박아놓은 듯한 구조물로 제방을 만든 다음 흙을 덮어 풀과 꽃이 자라도록 했다. 강바닥도 울퉁불퉁하게 만들고 물고기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도 따로 만들었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서는 이미 베어낸 목재를 활용했다. 기즈(木津)강 상류 상습 산사태지역에는 90년 목재를 바닥에 사다리모양으로 박아넣고 묘목을 심었다. 그 결과 현재는 울창한 산림이 조성됐고 산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일들은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행정당국의 열린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
우에노(上野)시 소재 건설성 산하 기즈강상류 공사사무소 나카무라 후미히코(中村文彦)부소장은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우리는 적극 검토해 실행합니다. 예전 관료가 군림하던 시절 밀어붙였던 많은 정책들이 결국은 부작용을 낳지 않습니까. 저도 퇴직하면 주민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낼 생각입니다.”라며 주민과 행정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현재도 기즈강과 나바리강이 만나는 지점에 면적 3000㎡가 넘는 대형 오수처리장을 만드는 작업이 민관 합동으로 진행중이다. 하수처리의 공정과 입지는 카와카미씨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연구했고 행정당국은 예산을 따와서 구체적인 공사계획을 세웠다. 이 공사계획에는 수초를 이용한 자연정화 공정 등 친환경적인 아이디어가 듬뿍 담겨있다.
또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환경 교육에 민관 모두 각별한 신경을 쓴다는 점.
기즈강상류 공사사무소에는 별도의 교육관이 있어 미에(三重)현 일대 학교들이 수시로 견학을 온다. 이곳에는 홍수가 났을 때의 기록사진과 치수사업이 완료된 사진을 비교전시하고 있고 홍수에 대비하기 위한 전통 가옥형태를 소개하는 등 역사공부도 병행할 수 있게 했다.
이곳 책임자인 마쯔다 미치다카(松田道孝)씨는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전통적 치수공법을 소개하고 있다”며 “교육청의 자문을 받아 마스코트를 만드는 등 어린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나바리시의 아카메(赤目)산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학습장이 시민단체 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굴곡이 많은 ‘톰소여 코스’, 습지가 많아 곤충 생태관찰에 적격인 ‘잠자리 코스’, 옛 무덤을 견학할 수 있는 ‘고분 코스’로 나뉘어 있는 이곳은 일본에서 제일 처음 내셔널트러스트 지역으로 매입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인공물이라고는 습지를 건널수 있게 만든 징검다리와 곤충을 관찰하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10평 남짓한 오두막 밖에 없다.
병원 사무장을 그만두고 이곳 산장지기로 눌러앉은 이이노 유지(伊井野雄二)씨는 ‘사토야마(里山·주민의 생활 터전이 되는 작은 산)’라는 개념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의 놀이공원보다 이곳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자연과 함께 살아왔던 본연의 모습이 살아있기 때문이죠. 멀리서 바라만 보는 산이 아닌 나와 함께 호흡하는 산을 어려서부터 접해야 세대간에도 공유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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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리시 환경지킴이 요시이 마사오씨▼
나바리시의 환경지킴이들은 독자적인 사무실 하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활동이지 사무실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카와카미씨의 말대로 이들은 주민 깊숙히 뿌리내린 채 실속있는 사업을 진행중이었다.
폐식용유 재활용 회장인 요시이씨는 손두부를 만든다. 기자가 찾아갔을때도 3평 남짓한 방 한칸 달린 가게에서 런닝셔츠 바람에 장화를 신고 한창 일하는 중이었다.
“튀긴 두부(유부)를 만들다 보니 기름을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집앞 개울을 흐르는 맑은 물이 내가 버린 기름으로 더렵혀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운동을 시작했죠.”
요시이씨는 자신이 만든 두부를 납품하는 음식점들부터 설득했고 이 운동이 확산되자 시에서도 내년부터 폐식용수 회수사업을 공식적으로 벌이기로 약속했다. 두부장수의 노력이 행정을 움직인 것이다.
나바리 강모임 시부타니 다카후미(澁谷喬文)사무차장은 조그만 약국 주인이다.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회원들간에 정보를 교류하고 연락을 취할 필요가 늘어나자 약국에 팩스와 전화를 하나씩 들여놓고 연락책을 자원했다.
“사무국장은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되지만 저같은 약국주인은 항상 자리에 붙어있기 때문에 연락책으로는 제격이죠. 별것 아닌데 사무차장이라는 감투를 주네요.”
약국에는 강모임을 안내하는 아무런 간판도 없었지만 시부타니씨는 “그래도 주민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일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아카메산에서 어린이 자연학습을 위한 쉼터를 짓고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도 자원봉사자였다. 스스로를 ‘마에노(前野)’라고만 소개한 그는 오사카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주민이다.
“길이 없어서 목재 하나하나를 짊어지고 와야 했어요.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제가 어렸을 때 뛰놀던 자연을 전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미에대학 박혜숙(朴惠淑)교수는 “팜플렛 선전보다도 소리없이 할 일을 하는 일본 시민단체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모양새보다 실속을 중시하는 이곳의 풀뿌리 환경운동은 간판과 명함에만 매달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사뭇 부끄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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