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7년 망명한 황장엽(黃長燁)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언론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황씨는 북한체제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평생을 북한권력의 핵심부에서 일하다 망명한 사람인 만큼 그의 견해는 ‘북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정부는 황씨의 북한체제 비판이 혹시 남북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남북한이 화해 협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해도 할 소리는 해야 한다. 북한측이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듣기 싫은 얘기는 봉쇄한다면 그것은 건전한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황씨가 국가정보원측으로부터 통보받았다는 정치인과 언론인 접견금지, 외부출연 강연금지, 책 출판 금지, 탈북자동지회 소식지인 ‘민족통일’출간금지, 민간차원의 대북민주화사업 참여금지 등 5개항을 보면 정부가 한 개인의 기본권을 이렇게 제한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황씨가 아무리 특수한 배경을 갖고 있다 해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인 그에게 말하고 쓸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정원측은 황씨가 북한체제 붕괴운동을 벌여 테러위협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그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자중해 줄 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씨를 ‘보호’하기 위해 말하고 쓸 기회마저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역으로 그런 기본권을 더욱 지켜주기 위한 ‘보호’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국정원측에 따르면 그동안 황씨는 ‘보호’를 받는 가운데서도 자유로운 활동을 해 왔으며 특정정치인의 면담과 국회에 참고인으로 출두하는 것도 자발적으로 거부했다는 것이다.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 역시 지난 국정감사 때 황씨는 제한을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황씨는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17일 임원장에게 탄원서까지 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그처럼 황씨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면서 밖으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대북정책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표출되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특정인의 입을 틀어막는 상황이라면 국민적 합의는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