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때문에 영국 왕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가전용 사냥터에서 상처 입은 꿩의 목을 맨손으로 비틀어 죽이는 사진이다. 지난 19일 선데이 미러 등 영국신문에 문제의 사진이 실리자 동물보호단체 등이 들고일어나 왕실의 ‘야만성’과 ‘무자비’를 비난했다. 왕실측은 “상처 입은 새의 목숨을 끊는 것은 고통을 없애주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항변했지만 실추된 여왕의 이미지를 되살리지는 못한 것 같다.
▷영국 등 유럽의 왕가, 귀족들의 사냥 취미는 별난 데가 있다. 프랑스의 루이15세는 대관식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던 길에 숲에서 사슴을 발견하자 행렬을 멈추고 사냥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1726년에는 276일 동안 사냥을 했다고 전해진다. ‘1000일의 앤’으로 잘 알려진 앤 블린과 헨리8세의 딸이었던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남자들에게 위엄과 강고함을 과시하려고 사냥을 즐겼다. 작센의 어느 제후는 보헤미아 왕위를 거부했는데 이유는 보헤미아의 사냥감이 작센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특권층이 누리는 취미인만큼 스포츠 사냥엔 제약도 많다. 우선 사냥감에게 도망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줘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 오리를 쏘거나 사냥감이 물웅덩이에 찾아올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는 것은 스포츠맨답지 않은 행동으로 간주된다. 다친 사냥감을 쓸데없이 괴롭혀서는 안되며 동물에게 상처를 입히면 반드시 쫓아가서 죽여야 한다. 이번 여왕의 꿩 목 비틀기도 사냥개가 물고 온 상처 입은 새는 반드시 즉각 죽여야 한다는 사냥꾼의 규범을 따른 것이다.
▷규범이 어쩌고 하지만 ‘74세난 인자한 할머니’와 ‘위엄 있는 영국 군주’란 상반된 이미지를 조화롭게 가꿔온 여왕에게 새 목 비틀기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사냥이 영국왕실의 전통 스포츠라 해도 요즘처럼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될 때에는 몸가짐을 조심해야 옳았다. 영국은 과거 한국대통령 방문 때 동물보호단체들이 일간지 한 면을 털어 ‘개를 먹는 나라의 대통령 방문 반대’ 광고까지 냈던 나라다. 왕실의 스포츠 사냥에 대한 이들의 향후 대응이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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