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박스(box)권 장세’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주가가 떨어져야 할 이유도, 올라야 할 근거도 없다. 여기서 더 떨어지기엔 이미 너무 많이 빠졌고 올라가기엔 시장의 힘이 빠져 있다. 이렇다 할 호재도 없다. 이런 상황을 ‘가치 덫(Value Trap)’이라고도 한다. 싸다고 냅다 덤벼들다가는 큰 코 다치는…. 그래서 싸다는 걸 다들 알면서도 사려고 하질 않는다. 요컨대 불확실성이 문제다.
그리고 불확실성에 관한 한 올해말이나 내년초까지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 관측이다. “미국경기가 경착륙하면 전망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증시가 어려워질 것”(교보증권 임송학 투자전략팀장)이라는 입장도 있지만 대체로 “악재도 호재도 없는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의견이다.
연말연초의 2대 변수로 꼽히는 구조조정과 해외변수에서 돌발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게 그 근거다. 다만 굿모닝증권 홍춘욱 과장 같은 이는 내년 초 미국의 금리 인하를 점치지만 그 효과는 투자자들의 심리 안정에 기여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본다.
▽언제나 오를까〓재미없는 기간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1·4분기 중 유동성장세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상무는 그 시기를 내년 3월경으로 잡았다. 첫째, 그 때쯤 30조원의 공적자금을 들이는 올해 2차 구조조정의 효과가 일단 민간부채 감소와 금융시스템 기능 회복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째, 때마침 국제유가도 계절적 수요 감소로 25달러 이하로 떨어져 기업수익성 전망을 호전시킨다. 셋째, 미국의 금리 인하와 달러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로 국제 투자자금도 구조조정의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한국 등 이머징마켓으로 이동한다는 것.
경기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하고 경기 정점은 이미 지났다고 보는 대우증권 이종우 연구위원도 “빠르면 내년 4∼5월 중 한번 정도의 상승 모멘텀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4.8%에서 하반기 5.8%로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3∼5월경에 주가에 미리 반영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같은 유동성장세가 대세상승으로 곧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없다. 가장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김한진 상무도 “세계 실물경기는 2003년은 가야 상승반전하고 국내 구조조정은 2006년은 가야 매듭될 것이기 때문에 내년에 대세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주가전망〓연말연초 주가가 견고한 박스권에 갇힐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 박스권을 이탈한 주가가 어느 정도나 궤도를 벗어날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가 크다. 낮게는 400선 이하부터 높게는 850까지 거론되고 있다. 신한증권 박효진 투자전략팀장은 “국내증시 특유의 높은 변동성을 감안하면 400선 이하부터 800선 이상까지를 한번씩은 다 훑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좁은 박스권을 전망한 이는 UBS워버그의 이승훈 수석 스트래티지스트. 그는 “(현재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대로라면) 저가매수세에 따른 간헐적인 상승세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침체장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485∼685선을 제시했다. 외국계 증권사의 냉정한 시각을 대표하는 그는 특히 구조조정 부진이 주가를 옭아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차 기업구조조정은 대상 업체들의 부채가 전체 기업 부채의 1.6%에 불과할 정도로 형식적이었다”면서 “구조조정을 가급적 피하려는 태도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돼 있어 자칫 일본이 겪은 장기저성장의 터널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전략〓지수가 자잘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런 장세는 종목별장세가 되기 쉽다는 게 일치된 의견이다. 마치 두더지게임처럼 매기가 업종별 종목별로 빠르게 순환하지만 그 경로를 사전에 알아맞히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화끈하게 급등할 종목을 찾아 ‘모 아니면 도’ 식의 배팅을 할 배짱이 아니라면 우량주와 경기방어주에 주목하는 게 좋다는 권고다. 김한진 상무는 자기자본수익률(ROE)이 10% 이상인 우량기업을 추천했다. 홍과장은 PER(주가수익배율)와 PBR(주가/주당순자산가치)가 낮은 가치주와 조선 철강 유화 등의 구경제 수출관련주에 주목할 것을 권유했다.
▼증시전문가들의 연말연초 증시전망▼
전문가
이름
거시변수 예측치
(%, 억달러)
연말연초 증시 예측
실질
GDP
성장률
소비자물가상승률
무역
수지
증시전망
주요변수
UBS워버그
이승훈 이사
(스)
3.9
3.2
130
침체장 속의 간헐적인 소규모 등락(485∼685).
부실기업 퇴출의 성공 여부가 핵심. 주가 수준은 매력적이나 추가주가하락 우려로 매수세 실종.
교보증권
임송학
투자전략팀장
(이)
5.7
3.6
30
박스권의 높낮이 차가 크다. 미국경기 경착륙하면 전망 자체가 무의미. M&A 허용되면 하락장 랠리 가능.
세계유동성 감소세 반전 시기, 미국 경기 연착륙 성공 여부, 구조조정의 진전 정도 등에 주목.
피데스
투자자문
김한진 상무
(이)
5.4
2.4
96
제한되고 과도기적인 유동성장세. 극단적인 역실적장세의 가능성은 낮음.
증시 모멘텀은 구조조정 성과가 나타남에 따라 점차 기업수익 전망(경기)에서 위험요소의 증감(금리)으로 바뀔 것.
현대증권
이상재 팀장
(이)
4.3
3.3
58
적어도 1·4분기까진 대세상승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융불안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 경착륙의 이중고에 직면.
대우증권
이종우
연구위원
(스)
5.7
3.2
96
국내외 불안요인 해소에 따라 주가 전환은 가능. 그러나 98년처럼 시원스럽게 올라가지 않고 지지부진한 양상. 대세전환은 가능하더라도 상반기 중반이후 가능하며 지수는 800∼850을 넘기는 어렵다.
내년 하반기 초에 경기는 아주 미약하나마 어느 정도 전환 가능할 듯. M자형(이중 봉우리형)의 두 번째 봉우리는 아니고 상반기에 5% 정도였던 성장률이 하반기에는 6%정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
굿모닝증권
홍춘욱 과장
(이)
5.8
3.9
114
연말엔 반등시도 계속 될 것이나 650∼700의 매물벽 넘기 힘들 전망. 내년 초에는 수출관련주와 구경제 대표주들을 중심으로 800∼850을 목표로 반등 시도할 듯.
내년 1·4분기에 미국이 금리인하를 단행하면 이는 한국증시에 장기악재로 작용할 전망. 내년 상반기중 한국은 경상수지 관리를 위한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음.
신한증권
박효진 팀장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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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폭이 큰 기간조정 지속. 지수는 400이하∼700선에서 변동하되 주로 600선 이하에서 움직일 듯.
새로운 호재는 없고 다만 악재 소멸과 낙폭과대가 호재.
주 : (이)는 이코노미스트, (스)는 스트래티지스트를 뜻함. 이코노미스트의 임무는 전체 거시경제전망, 스트래티지스트는 증시흐름 예측과 투자전략 수립이 주역할임.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