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의회는 사임의사를 밝힌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탄핵, 21일 해임하고 대통령권한대행에 발렌틴 파냐과 의장을 선출했다. 파냐과 대통령권한대행은 내년 7월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끈다.
이날 의회에서 12시간의 논쟁 끝에 후지모리의 해임안이 절대적인 지지로 통과되자 야당의원들은 의사당 발코니에서 “민주주의가 결국 이겼다”며 환호했다고 AP 등 외신이 전했다.
후지모리 전대통령이 21일 일본 도쿄에서 사실상의 망명의사를 밝힌 가운데 페루 국민 사이에서는 선거부정과 인권유린 혐의로 그를 반드시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거액의 재산을 일본 등지에 빼돌려 놓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후지모리 전대통령의 전 부인이며 야당의원인 수산나 히구치 여사는 21일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 회견에서 “후지모리는 철권통치 10년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왔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일본의 여러 은행에 비밀리에 예치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히구치 여사는 또 “일본계 이민 2세로 페루에서 출생한 후지모리는 일본여권을 비밀리에 취득한 이중국적자”라면서 “그는 망명 신청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일본에 체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히구치 여사는 “후지모리가 정보부 요원을 시켜 나를 암살하려 했다”면서 “자녀 문제로 이를 참아오다 96년 할 수 없이 이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후지모리 전대통령은 22일 저녁 뉴오타니호텔에서 나와 도쿄내 지인의 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이는 장기체류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장기체류할 수 있도록 일본 외무성에 정식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그런 절차는 밟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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