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私債)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어요. 매달 돌아오는 어음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채시장을 찾으면 다들 돈이 없다고 손을 내젓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요구합니다.”
경기 양주군에 있는 밸브생산업체 T공업의 정모이사. 급전을 마련해 부도를 막느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업체의 자금악화는 아파트 건설업체에 밸브를 납품하고 받아둔 어음이 할인되지 않은 데 따른 것. 정이사는 “최근 사채시장의 이자율은 3∼4개월 빌리는데 20% 정도로 IMF직후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안’과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 등 속칭 ‘돈세탁 방지법’을 정기국회에 제출,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 전해진 22일. 사채시장은 그나마 가동조차 되지 않았다. ‘발등의 불’을 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사채마저 구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명동의 사채업자 이모씨는 “내년부터 정부가 시행한다는 속칭 ‘돈세탁 방지법’ 때문에 상당수의 사채업자들이 전업을 고려하거나 상황만 보며 ‘납작’ 업드려 있다”면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부담이 겹쳐 계속 이 일을 할 건지 고민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이 조달하는 외부자금 중 사채의 비율은 약 2.5%. 예년에 비해 중소기업들이 은행권으로부터 차입하는 자금비율은 많이 높아졌지만 사채는 급할수록 찾게 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업퇴출과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금융기관이 중소기업 대출을 꺼려 사채조달이 중소기업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기협중앙회 홍순영 조사담당 상무는 “요즘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수 있을 만큼 신용도가 높은 기업은 중소기업중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급전조달을 위해서 사채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으며 사채시장 돈줄까지 말라 부도위기를 맞고 있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