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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농민들의 요구와 시위

입력 | 2000-11-22 19:05:00


농민단체 회원들이 전국에서 벌인 과격 시위의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동기는 이해할 만하다.

구제역 파동 이후 돼지고기 수출길이 막히고 사육 마릿수가 늘어 돼지값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다. 김장철인 지금 산지에서 배추 한포기 값은 100원 정도이다.

비료 사료 등 생산비용은 급등하고 경기 침체로 수요는 줄어 농산물 가격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니 농사 수입으로는 농협 빚의 원금과 이자를 갚기 어려운 농가가 많다.

농가부채 경감은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이 정부들어 5차례에 걸쳐 농가의 빚부담을 완화시켜주는 조치가 있었다. 그러나 2년간 원금상환을 유예해주는 바람에 내년에 상환해야할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농가부채 중 정책금융 14조원은 이자율이 5% 이하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자율이 11%대에 이르는 상호금융 대출로 총 규모가 18조원에 이른다. 11% 금리를 물 수 있을 만큼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 한국 농업의 현실이다. 정부는 상호금융의 예금금리를 낮추지 않으면서 대출을 정책자금 수준의 저금리로 개편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농촌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기지가 아니다. 인구를 분산시키고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환경을 지켜나가는 기능이 더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직접소득 보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농촌을 지키며 자연환경을 가꾸는데 대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내년부터 논농사 직불제를 시행할 예정이지만 관련 부처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직불제를 확대해 나가면서 형평에도 맞지 않고 모럴 해저드를 부르는 부채경감은 차차 없애는 것이 옳다. 빚이 전혀 없는 성실한 농민 20%는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는 셈이다.

농민단체 대표들의 주장처럼 농가부채의 책임이 정부의 실정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농민 농협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번에 농민단체들이 요구한 조건은 그동안 농민대표들이 요구한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섰다. 이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려면 25년 동안 45조원의 예산이 든다는 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무리한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식으로 시위를 진행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트럭을 몰고 경찰 저지선으로 돌진해 경찰관을 다치게 하는 불행한 사고도 일어났다. 이런 식의 불법 집단행동이 계속 번지면 대외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쳐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