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0일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 중계를 둘러싸고 방송사간에 치열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한발 앞서 독점 중계권을 따낸 곳은 MBC이지만 뒤늦게 KBS와 SBS가 뛰어들어 공동중계를 MBC측에 요청해 놓고 있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진 않았으나 MBC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세 방송사가 이날 밤 9시부터 30분 동안 일제히 중계를 내보내게 된다.
이런 공동중계는 방송계에 전부터 반복되어온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관심을 모으는 각종 행사와 스포츠 경기 등을 어느 한 방송국에서만 중계하면 될 것을 여러 방송국이 동시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해당 프로를 볼 의사가 없는 시청자에게는 채널 선택권이 봉쇄되는 동시에 공공의 재산인 전파 낭비라는 비판을 방송사들은 피할 수 없다.
방송사들은 순번을 정하든지 해서 얼마든지 ‘공동중계’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 주요 방송사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이 방법을 택하고 있다. 위성방송까지 준비하고 있는 우리 방송계가 여전히 구시대적인 관행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이번 중계는 지난 8월 MBC가 유럽의 중계권 대행사인 TWI와 단독으로 체결한 것이다. 전체 중계 권한이 MBC에 있음은 물론이다. 계약내용이 이렇다면 다른 방송사들은 욕심을 버리고 MBC측에 중계를 맡기는 게 순리다. 시청자들이야 어느 방송국이 중계를 하든 한 방송사로 충분하다. 경제논리로도 마찬가지다. MBC의 동의가 있더라도 다른 방송국들이 시상식 중계를 하려면 TWI측에 별도로 중계료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KBS측이 MBC에 공동중계를 요청하면서 밝혔다는 ‘명분’은 실소를 자아낸다.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국가적 행사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중계방송하지 못한다면 뭐가 되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방송의 공익성이야 모든 방송사에 같이 요구되는 것이며 MBC나 KBS는 같은 공영방송의 입장이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다. 최근 방송국들은 과당경쟁을 벌여 미국 메이저리그 박찬호 선수의 중계권을 향후 4년간 30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을 주고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큰 경사인 이번 시상식 중계는 예정대로 한 방송사가 맡음으로써 방송계에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