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의 차문화공간 '살드 마티네'
“이럴 때일수록 여유가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냄비근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차분히 차 한잔 즐기면서 샹송을 들으니 참 좋네요.”
직장인 김형식씨(27·여·서울 광진구 노유1동)는 며칠 전부터 점심을 먹고 나면 사무실근처 티살롱(Tea Salon)에 들르는 버릇이 생겼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가을을 채 즐기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고 뒤숭숭한 소식들은 잠시 잊고 편안하게 사색에 잠길 수 있어 좋다. 그가 찾는 곳은 중국 인도 네팔 등지에서들여온 200여가지 차에 한국 전통차 10여개를 더해 차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살드 마티네(석양)’.
열흘전 문을 연 이 곳은 ‘차 문화 전파’란 나름대로의 이유로 커피손님은 정중히 사양한다. 사이다 콜라 등 소프트 드링크류도 없다. 차의 향기를 음미하는 데방해가 된다며 담배도 못 피우게 한다.
최근 이곳을 찾은 패션디자이너 지춘희씨도 “그래서 더더욱 조용히 사색하기에 알맞다”고 반겼다. 햇살 혹은 석양을 반긴다는 간판의 글귀처럼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창틀을 모두 걷어 오픈하우스를 만들 계획이다. 저녁땐 인도에서 들여온 빅토리아 시대 영국 샹들리에가 발그스레한 조명을 자아내며 차의 느낌과 색을 그대로 살리라고 찻잔 테이블보 모두 흰색이다. 실내장식 판매스타일 등 이래저래 국내에는 유례가 없는 유럽형 티살롱이다.
이곳에서 파는 차는 찻잎 고유의 맛을 살린 스트레이트티, 향을 첨가한 플레이버티, 허브가 함유된 허벌티, 중국차 그리고 한국의 전통차인 명차 우전차 작설차 등 크게 5가지로 분류된다. 페퍼민트는 감기에 특히 좋고 중국차 랍상소우총은 기관지에 효능이 있으며 인도차 다즐링은 피부미용에 그만이라는 등 몸에 좋은 차들은 별도로 설명이 붙어있다. 캐러멜 진저 등 달착지근한 향과 맛이 느껴지는 차도 있다.
서남아시아의 지명을 뜻하는 인도차 압키파산, 그중 퍼스트플러시(첫 잎을 딴 것)엔 숫처녀의 풋풋함이 배어 있고 세컨드플러시(두번째 잎을 딴것)는 농염한 여성의 포도향 체취가 느껴진다는 등 맛과 느낌, 그 중에서도 성적인 느낌을 멋들어지게 설명하기도 했다.
별도의 티파드(Tea Pod)에 담으면 한사람이 석잔은 마실 수 있다. 6000원부터 1만3000원까지.
아쉬움이 남는 사람들은 카운터에서 50g 100g짜리 찻잎을 살 수 있다. 종류에 따라 틀리지만 1만원 정도면 20잔 이상 나온다. ‘살드 마티네’가 인도에 설립한 지사에서 매주 콜카타에서 열리는 차경매(Tea Auction)에 참가, 구입한 뒤 조금씩 정기적으로 보내온다. 오래 지나면 제 맛이 살아나지 않으므로.
다음달이면 차의 종류가 600여종까지 확대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차도 칵테일처럼 이것저것 섞어 우려내면 수만가지 맛을 내기 때문이다. 신상순 사장(40)은 “우리 사회에서 은근과 끈기가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며 “차 한잔으로 삶의 여유로움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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