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임은 영화나 만화에 비해 폭력에 더 쉽게 동화된다. 게이머 자신이 폭력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폭력을 구경할 뿐이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키보드를 눌러야 총이 발사된다. 그리고 상대가 쓰러진다.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 주저할 이유도, 겨를도 없다. 쉴새없이 총을 쏘다 보면 폭력에 무감각해진다. 팔이 떨어져나가고 머리통이 날아가도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검열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는 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열을 맡은 사람들의 입맛대로 심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대체로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견해를 대변하게 된다. 하지만 검열을 무조건 반대하기에 망설여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사일런트 스코프’는 다른 총격전 게임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몰려드는 적에게 난사를 하는 게 아니라 숨어서 저격을 한다. 망원 렌즈가 달린 총을 들고 멀리 떨어진 빌딩에 있는 테러리스트를 겨냥한다. 정확하게 조준을 해서 가능한 한 한 방에 해치워야 한다.
그러려면 머리를 겨냥하는 게 좋다. 한 방도 실수 않고 연속으로 해치우면 점수는 더 높아진다. 이 게임은 싸움이 아니라 사냥이다. 내가 먼저 쏘지 않으면 적이 나를 쏘는 일은 없다. 아무리 테러리스트라지만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표적일 뿐이다. 되도록 머리를 맞추고 어떻게든 총알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게임을 보면 망설여진다. 순수한 유희로서의 폭력까지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검열을 통해 게임을 걸러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것은 여전히 분명하다. 제도적인 검열이 아니라 시민 사회가 스스로 그런 게임을 튕겨내는게 좋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폭력적인 게임이 나오는 건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상품이다. 팔리지 않을 게임을 만들지는 않는다.
폭력적인 게임은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없는 폭력성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폭력은 이미 존재한다. TV에, 거리에, 학교에, 그리고 우리 마음 속 어두운 곳에 존재다. 게임은 이미 존재하는 폭력을 약간 부추길 뿐이다.
가장 무서운 건 정당한 힘의 행사로 여겨지는 폭력이다. 폭력은 늘 강자에게서 약자에게 행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정당성을 획득한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폭력에 길들여지는 게 아니다. 은폐된 폭력을 이미 온 몸에 걸치고 있다. 게임은 그걸 확인해줄 뿐이다. 남는 건 폭력적인 사회가 존재하는 한 검열로 폭력적인 게임을 걸러내는 건 의미가 없다는 절대적으로 옳은 원칙이다. 그리고 모든 원칙이 그렇듯 해결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박상우(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