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경남 김해에서 영화 ‘불후의 명작’ 촬영 도중 피아노줄에 매달려 와이어 액션을 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만 특수효과팀과 호흡이 안맞아 11m 높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땅바닥에 떨어지기 1,2m직전 특수효과팀 중 한 명이 순간적으로 피아노줄을 힘껏 당겨 충격을 흡수해준 덕분에 찰과상과 타박상 정도로 끝났지만, 정말 아찔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뒤 머리가 웅웅거리고 어지러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제 눈치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특수효과팀과 무리한 촬영을 주문한 스탭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좀, 조심해 주시지요. 자, 계속 촬영합시다.”
그 후 스탭들은 저를 ‘프로배우’라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제가 촬영을 계속하자고 한 이유는 어쨌든 제가 출연료를 받고 계약을 한 이상, 끝날 때까지 제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강력반 형사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 형사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어느날 새벽1시경 강력반 형사들과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경찰서에서 긴급호출이 왔습니다. 당시 전국을 도망다니던 탈옥수 신창원씨를 봤다는 시민의 제보때문이었습니다.
형사들은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 눈을 부릅 뜨고 민첩히 자리에서 일어나 운동화끈을 질끈 매곤 튀어나갔습니다. 후에 비록 허위신고로 판명났지만 호출 한마디에 취기도 날려버리는 멋쟁이 프로 형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우리같은 형사는 퇴근시간이 없어요. 범죄자들이 우리 근무시간에만 근무하고, 퇴근 후에는 범죄 안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힘들지만 그게 우리 일인데요, 뭘….”
“독감에 걸렸는데도 열심히 뛴 ××× 축구선수, 대단한 프로죠?” “시간약속 잘 지키는○○○ 배우, 정말 프로답습니다.”
‘프로페셔널’ 즉 ‘프로’는 자기 직분을 이해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말입니다. 결국 실업자 빼고는 전국민이 ‘프로’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성실하면 ‘프로’라고 쉽게 말해줍니다. 진정한 의미의 ‘프로’는 자기 책임과 의무감을 성실히 오랜 시간 무수히 이어왔을 때 비로소 씌워주는 ‘왕관’같은 것이 아닐까요?
1,2년간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식당도 의미있겠지만, 50년된 우동집, 100년된 초밥집에 왕관이 가야할 겁니다. 수십년을 성실로 일관해왔고, 자기 의무인 아셈(ASEM)정상회담 경호를 위해 치명적 병마인 암마저도 웃으며 흘려버린, 프로가 아름다운 이유를 다시 한 번 몸으로 확인시켜 준 장기택 전 강남경찰서 서장님께 왕관을 씌워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배우 율 브리너 선배님이 무대에서 그러했듯, 저도 먼훗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쓰러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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