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무용가 최승희,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은 한결같이 세계적인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드날린다.
그러나 이들 누구도 한국에서 예술적 역량을 기르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한 사람도 길러내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이들을 불러들이는 노력마저 소홀히 해왔다. 최승희나 윤이상, 이응로 등은 귀국조차 허용되지 않아 이국 땅에서 생애를 마쳤다. 생존 예술가들도 대부분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타고난 예술적 역량을 길러주지도 못하고, 외국에서 성취해도 받아주지 않는 현실은 곧 척박한 문화풍토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9월 1일부터 11월 26일까지 ‘새천년의 숨결’을 주제로 열린 경주문화엑스포를 보는 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문화엑스포를 통해서 새로운 문예작품이 얼마나 생산됐으며 그 예술적 수준은 어떠했는가, 문화전문가들이 얼마나 참여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고 문화창출 효과를 낳았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프로그램 소개나 하고 편의시설과 입장객 수나 따지며 전시된 문화재와 공연작품에 대한 주먹구구식 단평만 무성하다. 반월성을 무대로 장엄하게 펼쳐진 ‘우루왕’ 공연이나, 민족문화의 형성과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주제 전시 ‘동방의 빛을 따라서’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본격적인 평론은 보이지 않는다.
경주문화엑스포를 계기로 민족문화의 21세기적 전통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 가는가 하는 문화논리보다, 경제적 수지타산이나 헤아리는 20세기적인 경제논리에 매몰돼 있는 탓이다. 천년의 노래인 향가비를 비로소 세우기 시작하고 ‘우루왕’ 같은 보기 드문 대작으로 우리 예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경주문화엑스포의 문예진흥 기능을 한갓 문화 장삿속으로 가늠하고 만다면, 이 시대의 새 문화를 창출하기는커녕 오랜 전통문화마저 퇴화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문화의 세기로 온전하게 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임재해(안동대 교수·민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