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영웅에 관한 영화다. 에서 '죽도록 고생하며(Die Hard)' 영웅 대열에 합류한 브루스 윌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식스 센스)를 지나 다시 영웅들의 세계로 복귀했다. 이후 "다시는 영화 속에서 총을 들지 않겠다"던 팬과의 약속도 져버리지 않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총을 들지 않고도 영웅이 되는 방법을 충실히 알려준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데이비드 던은 일명 언브레이커블 맨(Unbreakable Man 부서지지 않는 남자)이다. 중년이 되도록 '언브레이커블 맨'인지 모르고 살았던 그는 한 번의 충격적인 사고로 인해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다. 열차 탈선사고로 승객들이 모두 죽었는데 그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 무렵 '유리 인간'이라 불리는, 여러 모로 데이비드와 다른 삶을 살아온 엘리야(사뮤엘 L. 잭슨)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만화 일러스트 화랑으로 오세요."
화랑을 경영하는 '유리인간' 엘리야는 131명의 승객 중 유일한 생존자인 그에게 "평생을 살면서 아팠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고 묻는다. 생각해보니 그는 여태껏 정말 한 번도 아팠던 기억이 없다. 오래 전 대형 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에서 무시무시한 반전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쳤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음침한 분위기 속에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심어놓았다.
영화는 오프닝 멘트에서 미국인들이 얼마나 만화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는데, 중반이 지나도록 이 오프닝 멘트와 영화 속 사건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미국인들은 평생 약 1년의 시간을 만화 보는 데 소요한다. 그러나 현실의 체험은 만화 한 커트에 담기엔 부족하다." 의 오프닝 멘트는 대충 이런 식이다. 데이비드에게 벌어진 의문의 사건과 미국인들의 만화 중독증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일까.
엘리야는 이 궁금증에 대한 첫 번째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줄곧 만화 중독증자였고 지금도 만화 관련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가 상상하는 세계는 만화 속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상은 선과 악으로 양분된 단순한 세계. 엘리야는 데이비드에게 "세상엔 악당과 영웅이 있고, 당신이 바로 그 악당을 물리칠 영웅"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잠시 헷갈려하지만 그럴수록 모든 게 또렷해진다. 그는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몸이다. 엘리야의 지적처럼 그는 다만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실제로 기차 탈선 사고 이후 그의 눈엔 악한 사람들의 만행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서 그 자신이 '보이지 않는 남자'였던 브루스 윌리스는 이 영화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남자'로 환골탈태한다. 하지만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삶은 괴롭다. 영웅이 된다는 것은 아들 앞에서 목에 힘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선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지독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자신의 특허품인 '반전의 미학'을 통해 악당과 영웅에 관한 지독한 우화 한 편을 들려준다. 그가 만들어낸 이 지독한 우화는 물론 함부로 발설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본 후 관객은 샤말란 감독의 '위대한 사기극'에 가장 중요한 공범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연출의 변에 앞서 감독은 보도 자료 앞면에 이런 부탁의 말을 적어 놓았다.
"먼저 영화를 본 사람이 충격적인 반전과 결말을 공개하고 말고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관객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면...그건 정말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는 충격적인 반전을 알고 보면 제 맛을 느낄 수 없다.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영화의 진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만화가 설파하는 세상의 이치와 실제 세상의 이치가 항상 같진 않다는 것, 세상이 영웅과 악당으로 양분된 단순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 감독은 마지막 반전을 통해 비로소 이 몇 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을 또렷이 내놓는다.
올해 서른 살인 인도 출신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단 두 편의 필모그라피로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으로 거듭난 인물. 그는 "가 내 스타일의 시작이라면, 은 내 스타일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작품에도 그가 여전히 반전의 미학을 고수한다면 조금 지루해질 것 같다.
은 감독의 주장과 달리 가 낳은 성공의 부스러기를 주워 모은 짜깁기 영화 같다.
L.A 타임즈의 케네스 듀란은 이 영화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받아들이기 힘든 쪽으로 흘러간다"고 쏘아 붙였다. 달라스 모닝 뉴스의 필립 원치 역시 "지루하고, 잘난 척하며, 제 멋대로인 영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매우 매혹적인 라스트 신"이라고 평했다.
황희연 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