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이야기이기는 하다. 세계 펜클럽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선물로 준 인삼차가 호텔 방마다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인삼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서양 문인들에게는 그것이 귀찮은 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인삼차를 대접한 곳이 있었다. 무슨 차냐는 여왕의 질문에 만병통치의 인삼차라고 설명했더니 여왕께서는 싱긋이 웃더라는 후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 문인들이 존경하는 대선배 장 자크 루소가 고려인삼의 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그 아리송한 미소도 분명히 경이로운 감탄으로 변했을지 모른다. 그냥 철학자요 문인이 아니다. 루소라고 하면 서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어린이들도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그의 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 루소가 그것도 200여년 전에 인삼을 애용했다는 것을 그의 제자요 문인이었던 베르나르당 드 생피에르의 회고록을 통해서 입증할 수가 있다.
1772년 6월 파리에서 그는 처음 루소를 만나게 되었고 그 뒤 불르본 섬에서 가져온 커피 원두 한 부대를 선물로 보냈다.
하지만 까다로운 루소가 비싼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돌려보내려 하자 자신에게도 답례품을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 때 받은 것이 바로 인삼 한 뿌리(Une rasin de Ginseng)였다는 것이다.
먼 나라의 먼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가까운 일본 관광객들도 고려인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춘향전처럼 일본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고전인 주신구라(忠臣藏)에 고려인삼이 등장한다. 다 죽게 된 사람이 마지막으로 인삼을 구해서 먹고 기사회생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인삼 값이 어찌나 비쌌던지 진 빚을 갚지 못해 목을 매달아 죽는다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고려인삼이 얼마나 신효하고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를 알려주는 일본인의 인삼관이다.
실제로 루소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일본의 유명한 과학자이며 의사였던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는 인삼 한 뿌리로 길에서 쓰러져 죽어 가던 아이를 구해냈다는 실화가 기록에 남아 있다.
신비한 인삼을 한국 땅에 내린 것은 하늘의 몫이다. 하지만 그 진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제대로 대접받게 하는 것은 한국인 자신의 몫이다.
지금 우리는 입만 열면 정보사회요, IT요, 인터넷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인삼이 외국으로 나가면 일본식 발음인 ‘진셍(ginseng)’으로 바뀌던 시대와 그리 멀지 않다. 인터넷에서 인삼을 검색해 보면 200개 가까운 관련자료가 나오지만 거의 모두가 한글로 된 것들이다.
어쩌다 영어나 일어로 된 홈페이지가 있어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어색한 직역체의 문장 그대로이다. 그러니 콘텐츠는 논할 단계가 아니다. 겨우 금산 인삼이 사이버 국제시장을 열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정도이다.
야후 영문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해 보면 사정은 더욱 나쁘다. ‘insam’이 아니라 ‘ginseng’이라고 검색어를 처넣어야 50개 정도의 자료가 뜬다. 대부분이 비타민제와 같은 건강 영양제 상품들인데 개중에는 ‘코리안 진셍’이라고 명기한 것이 제일 고가품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차이니스 진셍’이라는 이름을 붙인 인삼뿌리가 49달러라는 최고가로 눈길을 끈다.
인삼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가 하강국면에 들어섰다고 하여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작은 홈페이지 하나, 그 콘텐츠부터라도 고쳐 나가자는 것이다.
경제를 뒤흔드는 금융기관도 IT로 개혁하면 100분의 1 정도의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루소 같은 철학자도 머리만 잘 쓰면 우리의 경제를 돕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새천년준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