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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신간]안휘준교수, 불모의땅 '한국회화사' 연구

입력 | 2000-12-01 19:59:00


한국회화사의 본격적인 연구는 그의 이름과 함께 시작됐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1회 졸업생(61학번)으로, 미국 하버드대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최초의 회화사 박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의 안휘준 교수(60). 그는 특히 조선 초기 화가 안견 연구의 권위자다.

그가 지난 30여년간의 연구업적을 한데 모아 최근 책으로 냈다. ‘한국 회화사 연구’ ‘한국의 미술과 문화’(이상 시공사). 얼마 전엔 ‘한국 회화의 이해’(시공사)를 내기도 했다.

“세 권이 계획대로 다 나와서 마치 세 쌍둥이를 낳은 것처럼 후련합니다. 이제부턴 한국미술사 저작물들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할 겁니다. 번역도 보통 일은 아니겠지만 정년 퇴직 이전에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 교수는 스승이었던 삼불 김원룡 선생과 함께 쓴 ‘신판 한국미술사’도 영어로 옮길 계획이다.

이번에 나온 ‘한국 회화사 연구’는 860쪽에 이르는 역작. 지금까지 그의 회화사 연구의 결정판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별로 그 시대 미술에 관한 총론적인 논문과 구체적으로 접근한 각론, 그리고 중국 일본과의 회화교섭사를 다룬 논문들로 짜여져 있어 한 시대의 회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비교적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해 전문가 뿐 아니라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안 교수는 스스로 이 책을 “한국 회화사의 심층적인 개설서”라고 평한다. 특히 일본 중국 회화와 우리 회화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한국 회화의 독자성과 보편성을 심층적으로 고찰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 교수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시기는 안견을 중심으로 한 조선 전기. 삼국시대부터 출발한 한국 회화가 이 시기 들어서면서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정착해나가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술과 문화’는 훨씬 대중적인 책이다. 한국 미술의 형성 배경과 시대적 변화 등을 간단하게 추려놓았다. 또한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안 교수의 단상도 함께 실어 체험적인 미술사를 풀어놓고 있다. 전통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읽어낼 수 있다.

안 교수가 미술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미술사 연구는 불모지였다. 연구자도 없었고, 연구 성과도 별로 없었다. 회화 분야는 특히 더 그랬다.

“미국에서 귀국해 홍익대 교수가 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회화사에 대한 강연이나 강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철저한 미개척 지대였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로 인해 보람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후배들도 많이 늘어나고 연구도 활발해 마음이 놓입니다.”

안 교수는 다만 “겸재 정선이 활동했던 18세기를 전후해 한국 회화가 비로소 시작했다고 보는 견해는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이전의 한국 회화를 중국의 아류 정도로 보는 시각은 한국 미술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낸 책들의 저류에도 그의 이러한 생각이 깔려 있다.

안교수가 한국 회화사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지 30여년. 한국회화사는 이제 하나둘 씩 꽃을 피워나가고 있다. 그는 이제부터 외국에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도 열정을 투자할 생각이다.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