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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선택/근로자주식저축은 조세형평 훼손

입력 | 2000-12-04 18:28:00


정부가 최근 실시키로 확정한 근로자주식저축은 침체된 주식시장을 부양한다는 효과를 논외로 치면 조세형평 측면에서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정책이다. 근로소득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 비해 세금을 덜 내게 되는 까닭에 헌법에 보장된 조세평등주의에 정면 위배되는 정책이란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4인 가족 기준으로 연봉이 2000만원인 월급쟁이 A는 한해 대략 22만여원을 근로소득세로 내야 한다. 연봉이 3300만원인 B는 약 151만여원을 낸다.

그러나 연봉 3300만원의 월급쟁이가 3000만원 한도까지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할 경우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불입액의 5%인 150만원을 세액공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B의 세금은 1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세부담액이 22만여원인 A에게 여유자금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연히 가입은 어렵게 되고 결국 A는 22만여원의 세금을, B는 1만원의 세금을 내는 기현상이 초래된다.

시야를 넓혀보자. 어쩌면 최대한의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근로소득계층은 실제 A도, B도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구조조정과 퇴출 등 최근 국내상황에서 근로소득자들 가운데 실제로 여유자금을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해 연간 150만원의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은 누구인가. 최소한 연봉 5000만원 이상의 고소득근로자가 돼야 알짜 세금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근로자주식저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세액공제에 따라 저소득 근로자들보다 고소득 근로자가 세금을 덜 내게 되는, 이른바 역진적 조세제도란 점이다.

조세란 공공경비를 국민에게 강제적으로 배분케 하는 것으로, 납세의무자 사이엔 부득불 서로 세금을 떠넘기는 관계가 맺어진다. 이는 특정인이나 특정계층에 대해 면세 또는 감세 혜택을 주면 다른 납세자가 그에 따른 세금을 분담한다는 의미로, 근로자주식저축 같이 고소득층의 세금만 줄여주는 역진적 세제는 결국 저소득층의 추가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법 논리로 접근하자면 조세평등주의의 문제다. 헌법상 조세평등주의가 요구하는 담세능력에 따른 과세는 같은 소득에 대한 같은 과세(수평적 조세정의)와 소득이 많은 사람에 대한 더 많은 과세(수직적 조세정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근로자주식저축제도는 수직적 조세정의를 보기 좋게 내팽개치고 있다. 세제당국은 연간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최고가입한도인 3000만원까지 불입할 수 있으며 세금혜택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이상한 평등론을 내세운다. 물론 최근의 위기정국을 자초한 정치권에 떼밀려 고육책으로 마련한 제도란 점에서 세제당국의 고충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보다 세금을 덜 내는 ‘기현상’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해명을 해줘야 옳지 않을까. 증시부양 등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조세평등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추진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선택(삼일인포마인 조세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