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농담을 좋아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의 주인공인 사립 탐정 '사에바 료'가 심각한 표정으로 5분을 견디지 못하듯, 타고난 성격이 심각하길 싫어합니다. 모두들 심각하고 침울한 분위기에 짓눌려 있을 때 재치 있는 유머 한 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절로 좋아집니다. 남을 웃기려는 노력은 참 보기에 좋습니다. 웃기는 데 성공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실패해도 뭐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웃기겠지요.
12월2일 개봉된 는 정말 웃기는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다소 과장된 연극적 연기가 눈에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감독 미타니 고키가 직접 쓴 각본은 웃기는 정도로 따지면 못지 않습니다.
연극 연출가와 희곡 작가 출신이라는데 모르긴 몰라도 라쿠고(落語)나 만자이(漫才), 교겐(狂言)을 아주 즐기는 사람일 듯 싶습니다(라쿠고나 만자이는 둘 다 만담을 일컫는 일본말입니다. 특히 만자이는 둘이서 농담을 주고받는 만담을 일컫습니다. 교겐은 노[能]의 막간을 이용해 관객들을 웃기는 희극을 일컫는 말입니다). 극을 이어 붙이는 솜씨가 어딘지 모르게 일본 전통 만담을 닮았거든요. 처음에는 별 것 아니었던 상황의 비틀림이 점점 더 도를 더해 가는 형식 말입니다. 물론 이런 형식은 세계 코미디의 대체적인 흐름이기도 합니다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익살꾼들을 천히 여겼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전통 사회 역시 만담꾼들을 그리 대단하게 대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덕분에 일본 전통 사회의 만담꾼들은 세상의 코미디언이 느끼는 '피에로의 슬픔'을 곱으로 느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이들의 만담은 지금껏 살아남아 대중의 사랑을 한껏 누리고 있고 우리의 만담은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파트너의 머리를 한 대만 쥐어박아도 폭력적이네 어쩌네, 폭력적인 데다 유치하기까지 하네 어쩌네, 조금 웃기긴 하지만 교훈이 없네 어쩌네, 애들이 볼까 무섭네 어쩌네, 난리를 부려대는 근엄한 분들의 서슬에 서영춘 배삼룡 같은 불세출의 코미디언들은 졸지에 유치한 딴따라로 평가절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어떤가요. 탈춤이나 광대극은 1년에 한 번쯤 소극장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며 고통에 찌든 백성들을 잠시나마 웃겼던 만담 역시 동춘 서커스단을 끝으로 슬금슬금 자취를 감춰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남은 것은 토크쇼 스타들의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밖에 없습니다(마당극이란 약간 변형된 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형식의 극이 인기를 얻는 현실 자체가 차라리 슬플 지경입니다).
역사를 이어가는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분들이 해학과 익살의 소중함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참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진국 코미디는 말로 웃기는데, 우린 몸으로만 꼴값을 떨어대니 유치하달밖에…" 하는 따위의 편견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찰리 채플린이 어디 말로 웃겨서 위대한 코미디언입니까. 영화광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버스터 키튼은 어떻습니까. 스탠딩 코미디 하는 외국 코미디언을 한 번 보세요. 얼마나 얼굴 표정을 짓이기는지. 사방을 휘저어대는 몸짓 발짓은 또 어떻고요. 그들도 몸과 말을 한껏 이용해서 웃기려 합니다. 우리 선배 코미디언들처럼 말입니다.
예를 더 들어볼까요. 일본의 '영화 천재' 기타노 다케시가 정작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는 얼마나 저질 유머를 구사하는지 상상도 못할 겁니다. 짐 캐리는 역시 구역질 나는 유머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연기력도 뛰어난 배우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코미디는 풍자가 깃들 수록 격이 높아지지만 그보다는 우선 웃겨야 합니다. 웃기고 나서야 비로소 풍자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지요. 웃기지도 않은 채 교훈만 가득해서야 어디 그게 윤리 교과서지 코미디이겠습니까. 그걸 보고 누가 웃기다고 박수를 치겠습니까.
저질 유머를 잠자코 두고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이면 열, 모조리 격조가 하늘을 찌르는 코미디이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라는 말입니다.
코미디 영화를 보러가면서 "좋다, 어디 얼마나 웃기나 보자. 못 웃기기만 해봐라" 하며 허리띠 꽉 조여 매는 일은 이제 그만두는 게 어떨까요. 를 보러 가실 때에는 허리띠를 한 구멍쯤 풀어놓으세요.
김유준66090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