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 구본무(具本茂) LG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창가에는 고성능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구회장은 업무 틈틈이 망원경으로 한강 밤섬의 철새들을 살펴본다. 중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 한가로이 강변을 노니는 철새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는 것.
구회장의 각별한 ‘새 사랑’은 재계에서 꽤 알려졌다. 어린 시절 다친 새 한 마리를 우연히 발견하고 정성껏 치료한 것이 계기가 돼 조류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됐다는 것. 이제는 새의 몸짓과 날갯짓을 보거나 먼 발치에서 울음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인지 알아맞힐 정도가 됐다고.
그는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가 물고기를 낚아채는 장면을 발견해 한국조류보호협회에 알리기도 했다. 밤섬에 몰래 들어가 새 알을 훔치는 사람을 적발해 당국에 신고토록 한 적도 있다.
작년에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LG트윈타워에 둥지를 틀자 관리자에게 특별 보호토록 지시해 6마리 모두를 부화시켰다. LG 프로농구단의 명칭을 송골매의 일종인 ‘세이커스’로 붙인 것도 구회장의 새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LG측은 설명했다.
구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LG상록재단은 5일 세계적인 희귀새와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새 등 450종의 모양새와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조류도감 ‘한국의 새’(국·영문판·사진)를 발간했다. 이우신 서울대교수, 구태회 한국조류학회 이사, 박진영 조류연구가 등이 집필했고 일본인 화가 다니구치 다카시(谷口高司)가 그림을 그렸다.
4년간 6억원을 들여 완성한 이 책은 기존의 사진도감과는 달리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을 적용한 점이 특징. 종별로 수컷과 암컷, 어미새와 어린 새, 여름깃과 겨울깃 등 조류 식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그림을 풍부하게 수록했다.
구회장은 조류도감의 기획에서 출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며 자문을 했다. LG상록재단은 ‘한국의 새’ 판매 수익금 전액을 조류보호사업에 쓰기로 했다.
구회장의 부친인 구자경(具滋暻)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뒤 버섯 배양에 심취해 있다. 구회장 부자의 대를 이은 ‘자연 사랑’이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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