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작가가 아니다' 展, 성곡미술관 내달 20일까지
내년 1월 20일까지 계속되는 성곡미술관의 기획전시 ‘나는 작가가 아니다‘는 현대미술계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기성 작가들을 이토록 통렬히 조롱할 수 있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많은 기성작가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동안 소비사회에 편승해 미술을 현란하고 기발한 상품으로 포장해 대중들을 현혹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오랜 시간과 고뇌가 필요한 철학이니 상상력이니 하는 알맹이는 모두 던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상품을 좀더 색다르게 보이려고 테크놀로지를 가미시켰다. 미술의 두 축이 철학과 상상력에서 아이디어와 테크놀로지로 대체됐던 것이다.
그러나 빈약한 아이디어와 저급한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이내 예리한 관객들에게 그 약점을 간파당했다. 최웅규의 ‘고흐의 방’이나 석기준의 ‘우웩’을 보자. 아마추어에 불과한 이들의 작품이 기성작가들보다 아이디어가 부족한가, 테크놀로지가 저급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산뜻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외관상으로 작가, 비작가의 구별은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기계, 전자시대의 도래는 이미지의 생산에도 급격한 영향을 미쳤다. 사진과 컴퓨터의 자유로운 사용은 누구나 이미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과거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미지를 시각화할 테크놀로지, 즉 숙달된 손이 없으면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나 이미지를 생산,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실 이미 20세기초 현대미술가들이 일상을 미술로 끌어들이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는 무너졌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예술가인 것이다. 단지 그동안 한국 교육의 문제와 한국미술계의 폐쇄성으로 미술계 주변만을 맴돌았을 뿐이다.
과거 미술계 고유의 업무였던 이미지의 생산과 분석은 과학, 철학, 의학,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미술과 과학의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이미지 머신(machine)이 되어 이미지의 생산에만 집착한다면 미술가는 그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박우찬(미술평론가/대구시립미술관건립전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