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환. 회갑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이지만 제도권 미술계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내년 1월 21일까지 열리는 전시회가 홍익대 입학 40년만의 첫 개인전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는 1960년 홍대 서양화과를 입학했다.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둔 뒤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행상, 외판원, 방범대원 등 안해본 게 없다. 민속가면 제작자, 고등공민학교 미술강사, 누드미술학원 경영, 민속연구소 연구원, 출판사 편집장 등 문화 관련 이력도 다양하다.
철저히 제도권 울타리 밖을 떠돌던 그는 80년 ‘현실과 발언’의 창립회원으로 뒤늦게 미술작업을 시작했다.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몬드리안 호텔’ 등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양쪽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실과 발언’이 해체된 후에는 또 몇몇 기획전에서나 간간히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이번 전시에서 그는 비닐끈, 쇼핑백, 은박지, 신문, 색종이, 스티커, 장난감, 형광펜 등 잡다하기 이를 데 없는 재료로 줄줄이 제작한 ‘1000원짜리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비싸봐야 1000원짜리인 폐품 등을 활용해도 얼마든지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셈. 고급으로만 치닫는 미술계 풍조에 경종을 울리는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눈길이 오래 머무는 것은 역시 가난하고 바쁜 삶 속에도 느긋함을 간직하고 있는 유화 작품. ‘짜장면 배달’에는 전력질주하는 배달청년의 모습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표현돼 있고, ‘웃음소리’ 등의 추상작품에서는 웃음소리가 캔버스를 녹여버릴 듯 지글지글 끓고 있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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