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서울 목동에서 시내로 가는 지하철 5호선은 유난히 붐볐다. 초등학교 3, 4년생이 단체견학을 가는 듯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머리가 아파 올 무렵, 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앵벌이’ 소년이 나타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차중에 계신 신사숙녀 여러분….”
순간 조용해진 전철은 소년이 앉은 자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소년은 무대, 아이들이 우 몰려선 자리는 관객석이 된 셈.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눈빛에 소년의 자존심이 걱정됐다.
소년이 좌석을 돌기 시작했다. 동생뻘 되는 아이들은 애써 무시한 채. 그때였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주섬주섬 가방이며 주머니를 뒤적이는 게 아닌가. “넌 얼마 할거니?” 소곤대는 목소리.
별 성과 없이 한바퀴 돈 소년이 다음 칸으로 가려는 순간, 아이들은 쭈뼛거리면서도 다급하게 ‘코묻은’ 돈들을 내밀었다. 줄을 서다시피 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돈을 받던 소년의 굳은 얼굴은, 자리를 뜨면서 아이들 쪽으로 꾸벅 고개를 숙일 때쯤엔 따스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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