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최진실-조성민 커플의 결혼식장을 취재하러 나섰다가 뜻밖의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올해 한국 연예계 10대 사건의 하나로 꼽힌다는 '커밍 아웃(Coming Out)'의 주인공 홍석천.
오후 5시부터 열리는 결혼식에 1시간 일찍 도착한 그는 호텔 로비를 지키고 있던 보도진의 집중적인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갈색 모자에 코트를 입은 그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 제작진의 요청을 받고 최진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애써 차분한 모습으로 취재에 응했다.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해 바쁜 걸음을 움직이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지내요?"
"그냥 그렇게 지내요."
"힘들지 않아요?"
"아뇨, 전과 별로 달라진 것 없어요.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본 후 그는 인사 대신 기자를 끌어안았다.
'커밍 아웃한 연예인과의 포옹!'
솔직히 그 순간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이 의식됐다. '저 사람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남들과 별 수 없구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홍석천의 발언은 올해 연예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용기를 칭찬했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는 성적 타락의 한 현상으로 그를 보았다.
특별히 동성애에 대해 옳고 그르고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일반 사람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신병자 취급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보다 앞선, 진보적인 모습이라고 미화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커밍 아웃' 발언 이후 벌어지는 찬반 논쟁에서 연예인이라는 '전문 직업인 홍석천'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쪽에서는 그를 사회 변혁의 기치를 든 운동가로 떠받들고 있다. 이 사회의 구습을 깨는데 있어 '얼굴마담'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는 이단아로 단정한다.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두면 선량한 청소년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칠 '오염된 인물'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얼마전 그의 방송 출연, 특히 어린이 프로그램 출연을 중지시킨 해프닝은 그런 시각들이 충돌하면서 벌어진 한 예이다.
외국 스타들의 경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들이 꽤 많다. 30년 가까이 팝계의 정상을 지키고 있는 엘튼 존의 경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조지 마이클 역시 지난 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커밍 아웃'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특별히 더 사랑을 받거나, 아니면 배척당하지는 않는다.
새로 발표한 앨범이 이전 작품보다 부진하다고 해서 동성애를 원인으로 들먹이지도 않고, 탁월한 걸작이라고 해서 동성애가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떠받들지도 않는다. 다만 남보다 탁월한 음악적 재능과 노력에서 나오는 결실들을 평가하고 좋아할 뿐이다.
뮤지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새내기 시절 홍석천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연기는 조금 어설프지만,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연기와 노래, 춤을 겸비한 스타가 되겠다고 큰소리치던 그이다. 조금 덜렁대는 성격이지만, 밤에 교통사고 당한 사람을 길에서 발견하고 자기 차에 실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는 착한 심성도 있는 친구이다.
그러나 '커밍 아웃'을 하기 전 그는 냉정히 말해 단지 '코믹 스타'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완성되지 않은 기대주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행보에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과 기대, 비난은 웬만한 톱스타 못지 않다.
하지만 그 관심만큼 그가 연예인으로 돋보이는 활약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인 홍석천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자신이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것만큼 평가받기를 원하고 있다.
결코 본인이 원하지 않는 그 쓸데없는 사회적 명성의 짐, 이제 그만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김재범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