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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살아보니]피터 린포드/활력 넘치지만 무질서

입력 | 2000-12-06 18:30:00


모든 것이 활력 넘치고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말을 수없이 듣던 서울로 3월 발령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물결처럼 쉼없이 흐르는 교통의 흐름 속에서, 또 시민들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나는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직감했다.

▼참을성있게 줄서는 모습 못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국의 일상생활이 가족과 식사, 그리고 쇼핑에 집중돼 있으며 여기에 노래 부르기와 사교모임이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게 됐다.

가족에 대한 중시는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부분으로, 다른 나라에 귀감이 될만한 것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숭배와 책임감은 연령, 성별, 빈부의 차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하나의 지침이 되고 있으며 한국을 하나의 강한 공동체 윤리로 연결하는 매개체로 보였다.

가정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서 내가 가장 놀란 점은 사람들이 참을성 있게 줄서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아무 생각 없이 끼어들기를 하는 것이 꽤 보편화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한 음악회에서는 자신이 사지도 않은 고급 좌석에 앉아서는 제 값에 좌석을 산 사람이 제발 나타나지 않기를 고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광경은 내가 그동안 살아본 많은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었다.

넘쳐나는 한식당과 늘어나는 양식당에서 외식하는 일과 ‘사교성 음주’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인 듯하다. 서울의 음식문화는 단순히 음식이라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의사소통의 장을 제공하며 가족과 친구 동료간의 관계를 원활히 하는 촉매제로 보인다.

서울에는 엄청난 인파가 24시간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지하철은 언제나 북적대며 공식만찬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지 못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 다른 승객과 택시를 함께 타는 일도 이채롭다. 사람들은 길에서나 지하철역에서 서로 부딪치는 일이 다반사지만 사과도 하지 않고 지나쳐 간다.

뭐니뭐니 해도 서울의 가장 골칫거리는 교통인데 남을 배려하지 않고 아무 곳에나 주차하는 습관 때문에 더욱 가중되는 듯하다. 벌금과 견인 조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고마구잡이 도로공사도 이에 한몫 하는 것 같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비용절감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불편한 것이 많긴 하지만, 서울사람들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친절하다. 따뜻한 마음의 서울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매우 친절하다. 모든 방문객이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좋은 경험과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책임감 같은 게 있다고나 할까.

서울에서의 비즈니스는 활기차다. 내가 경험했던 아시아권 어느 나라보다도 활기차며, 적극적인 스타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자신감과 신념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일 스타일은 매우 직선적이다. 이들은 매우 능숙하고 강한 협상가들인 동시에 성실함도 겸비하고 있다.

▼교통난 비용절감차원 접근을▼

서울은 이제 세계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국제도시로서의 분위기와 면모를 갖춰가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엄청난 인구가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고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톱디자이너의 옷가게, 전통문화와 가치관을 함께 담고 있는 식당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밤의 네온사인 사이로 전통의 멋과 역사를 느끼게 하는 사찰이 공존하기도 한다. 이렇듯 서울은 혼돈 속에서도 정말 잠재적 멋을 지닌 역동적인 도시라고 하겠다. 이런 도시에 살게 돼 너무 기쁘다.

▼약력▼

피터 린포드 공사는 1961년 영국 그림즈비에서 태어나 호주 모나쉬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81년부터 일본과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84년부터 91년까지 수출입 및 마케팅 회사를 경영했다. 92년부터 5년간 재일 호주무역대표부에서 근무했으며 97년 후쿠오카 주재 호주무역대표부 영사를 거쳐 3월 한국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