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 퇴진론으로 민주당이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최고위원들의 간담회에서 처음 ‘퇴진론’을 제기한 뒤 당 안팎으로 공감대를 넓혀가자 권위원측이 ‘음모론’을 제기, 갈등이 증폭됐다.
여기에 ‘동교동계 2선후퇴론’이 가세하고 ‘양갑(권노갑, 한화갑 최고위원) 대결론’도 불거지자 퇴진론은 급격히 당내 권력투쟁 양상을 띠게 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번 갈등이 권력투쟁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본질은 국정과 당 운영을 위기로 내몬 데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으며 집권 시스템의 잘못은 없었는지를 가려내는 데 있다. 이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고서는 집권측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정위원이 권위원의 주장처럼 ‘음모’ 차원에서 권위원 퇴진을 주장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권위원이 YS정권 때의 김현철(金賢哲·김영삼 전대통령 차남)처럼 투영되고 있다”고 한 부분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김현철씨가 누구인가. 아버지인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온갖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며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정권의 파탄을 몰고 온 사람이다. 그렇다면 집권당의 최고위원이 다른 최고위원을 향해 ‘제2의 김현철’을 경고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도한 인사 및 이권개입 등으로 정권을 좌지우지하다 결국은 망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권위원측은 이런 지적에 “증권가 루머를 여과 없이 전한 것”이라며 반발하지만 이른바 ‘동교동계의 좌장’인 그가 이런 소문에 휩싸인 것 자체가 민망스러운 일이다. 특히 권위원측의 반박처럼 증권가가 아니라 바로 당내에서, 후배 정치인들간에 이런저런 소문과 의혹이 번진다는 것은 문제다.
동교동계가 “김대중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지켰다면 이런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동교동계 실세들이 전면에 나섰더라도 여야관계, 국회운영, 당운영이 민주적으로 이뤄졌다면 이런 지적은 없었을 것이다. 집권 3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동교동계 등 몇몇 측근 실세가 인사와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해 결국 때이른 국정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김대통령의 연말 당정개편은 바로 이런 반성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쓴소리’가 쏟아지는 것을 갈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집권 시스템의 민주화를 위한 진통으로 보아야 한다. 대통령의 연말 결심을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