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루이스야'
교육이 한 국가의 백년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고 한다면 프로에서의 드래프트는 한 팀의 10년 농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중대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짧은 KBL 에서는 아직 이러한 예들을 찾기 힘들지만, 50년이 넘는 장대한 역사를 갖고 있는 NBA에서 이러한 경우를 종종 목격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역시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던 휴스턴 로케츠는 랄프 샘슨이라는 좋은 센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학 최고의 센터였던 휴스턴 대학 출신의 아킴 올라주원을 선택했다. 게다가 올라주원은 휴스턴지역 팬들이 가장 아끼는 지역스타 였기 때문에 로케츠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던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1984년 LA 올림픽 남자 농구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학 최고의 스타였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마이클 조던을 외면한 채 켄터키 대학 출신의 '빅맨' 샘 보위를 지명하게 된다. 이는 바로 전 해 블레이저스가 지명했던 휴스턴 대학 출신의 슈팅 가드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유망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전체 3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된 마이클 조던이 NBA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더불어 불스가 90년대에 두 차례의 리그 3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반면, 샘 보위는 이렇다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채 훗날 이팀 저팀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고, 블레이저스는 1984년 이후, 아직까지 단 한차례의 우승도 해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블레이저스가 1992년 NBA 파이널에서 그들이 1984년 드래프트에서 지나쳤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게 패했을때, 블레이저스는 얼마나 억울해 했을지…)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입문한 선수 가운데 대학 시절의 활약으로 인해 기대를 한 몸에 받다가도 구단을 배신(?)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전혀 기대하지 안았던 낮은 순위의 지명자들이 예상외의 활약을 해주며 팀에게 기쁨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가까운 예를 보면,1989년의 퍼비스 앨리슨, 1995년의 조 스미스, 1998년의 마이클 올라워칸디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그해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문했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프로에서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일명 '속았다시리즈'로 전락해버린 선수들이기도 하다.
반면,1986년의 제프 호나섹, 1990년의 세드릭 세발로스, 1998년의 라샤드 루이스 등은 모두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지명됐다.그러니 이들은 그다지 지명도 있는 선수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외의 좋은 활약을 펼치며 각팀의 핵심 전력이 되었던 전적이 있는 선수들이다. 특히 라샤드 루이스는 '현재 진행형' 으로 시애틀 수퍼소닉스의 차세대 프렝차이즈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