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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의 시네닷컴]스크린쿼터 그늘속 명화

입력 | 2000-12-07 18:47:00


얼마전 서울 정동 스타식스 극장 6관에서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로 열린 ‘오손 웰즈 회고전’에서 있었던 일.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보던 도중, 옆자리에서 “아!”하는 나지막한 탄성이 들렸다. 4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탄성의 주인공을 뒤따라가 무슨 느낌이었는지 물었더니 한사코 피하던 그는 “말로만 듣던 영화를 보니 나도 모르게 좋아서…. 근데 이런 영화를 또 볼 수 있을까요?”하더니 바삐 사라졌다.

고급 영화관을 지향하며 지난 주말 문을 연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 극장. 운영자측이 놀랄 정도로 중년 관객이 많다. 관객의 40% 정도가 30, 40대다. 특색있는 공간을 표방한 이런 극장을 다니다 보면 20대 초반 관객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획일화된 영화문화에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듯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고전, 예술영화 전용관을 표방한 서울 시네마테크는 현재 ‘유랑 극단’신세다. 정동 스타식스 극장과 대관 조건을 명료하게 하지 않은 문제도 있지만, 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채워야 하는 극장쪽 사정 때문에 ‘오손 웰즈 회고전’이 열린 스타식스 6관에서는 한국영화 ‘리베라 메’가 상영 중이다. 예술영화 전용관인 서울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 극장도 스크린 쿼터 때문에 곤란한 지경이다.

한국에서 고전, 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난해 4월 개관한 할리우드 고전영화 전용 상영관인 클래식 시네마 오즈는 회원 2000여명의 12%가 50, 60대였을 정도로 중년 관객들의 호응이 컸지만 적자를 견디지 못해 1년만에 망했다.

공공기금으로 운영되는 외국의 시네마테크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영리단체가 아닌 고전, 예술영화 전용관에 왜 공공기금을 지원해야 하는가는, 지혜를 저장하는 도서관 하나 없이 대형 서점만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자명해진다.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스크린 쿼터의 문제도 그렇다.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는 고전,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면 스크린 쿼터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말로만 듣던 영화를 보며 탄성을 지르던 경험을 행복하게 기억하는 관객들, 젊은이들 틈새에서 위축되지 않고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 새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옛 것을 공부하고 싶은 관객들은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조차 없는 한국에서 여전히 불행하다.

그런 이 땅에서 국제영화제는 해마다 몇 번씩 열리고 영화를 말하는 매체는 넘쳐난다. 여기엔 뭔가 불균형이 있다.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