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고아원’이라 불리는 지방의 아동생활시설 출신 김모군(20). 99년 서울의 명문대 영문학과에 특례입학했지만 1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평균 B+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데 성적이 그렇게 나오지 않은 것. “객지에서 한 학기에 200여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하고 생계까지 꾸린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잠시 보육원으로 돌아갔던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방을 구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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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육원 출신 유모양(19). 99년 서울 근교의 4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그는 다행히 사설재단의 장학금을 받는다. 그러나 전액지원이 아닌 데다 생활비와 용돈 등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보육원에서 나올 때 가져온 후원통장에 들어 있던 돈도 조만간 바닥날 상황이다.
대전의 아동생활시설 ‘평화의 마을’에서는 98년말 4명이 대학에 합격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2명만이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유는 물론 돈이다.
보육원생들은 고등학교까지는 정부에서 학비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만 18세가 되는 순간사정이 달라진다. 현행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만 18세면 보육원을 떠나 독립해야 하기 때문. 대학 또는 직업학교 등에 입학할 경우, 경우에 따라 보육원에 머물 수는 있지만 학비가 지원되는 것은 아니다.
보육원을 떠날 때 이들에게 주어지는 정부 지원은 정착금 200만원이 전부. 여기에 대부분의 보육원에서 개인별로 만들어 두었다가 퇴소할 때 쥐어주는 후원통장이 있다. 후원금은 개인차가 있지만 평균 100만∼200만원 선.
이들 퇴소 아동들은 어디로 갈까. 은평천사원 조성아(趙聖3·37)후원개발실장은 “갈 수 있는 곳은 숙식이 가능한 공장이나 사무실 등”이라며 “유혹이 많은 나이라서 나쁜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큰 퇴소아동들이 거의 방치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
대학이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사회. 일부 ‘깬’ 보육원들이 원생들의 유일한 중산층 편입 기회로 대학진학을 유도하고 있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 최근 불우아동을 위한 특별전형제도가 마련돼 대학진학 기회가 늘어났지만 김군의 경우처럼 성적을 유지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평화의 마을 최소자(崔小者·53)총무는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적절한 학습환경과는 먼 곳에서 자라온 이들에게 대학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고 말한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박인선(朴仁善)교수는 “그런 탓에 1만2000여명의 취학 시설아동 중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은 전체의 약 20%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육원 출신 중 전문대를 포함해 현재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230명 선.
한국여성개발원 김성경(金聖卿)연구원은 “퇴소 아동들에 대한 자립기반 문제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며 “최소한 이들이 자립할 때까지 공동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자립지원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름다운재단은 ‘고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탁된 김군자(金君子)할머니 기금으로 우선 이들 퇴소아동들의 대학진학과 자립을 위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공미정(孔美晶)간사는 “시설에 속한 아동들에게는 어느 정도 지원이 이뤄지므로 퇴소 직후의 아동들에게 관심을 돌리려 한다”고 말했다.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