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결정할 플로리다주 사법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 진영의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수작업 재검표를 통한 극적인 역전승을 노리고 지루한 소송전을 벌여온 고어 진영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판결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으나 승세를 굳혔다고 자임하는 부시 진영은 느긋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고어 후보는 7일 수작업 재검표에 관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재심리 과정을 TV로 모두 지켜본 뒤 판사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자로 나섰던 민주당측 데이비드 보이스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입장을 훌륭히 대변했다고 치하했다.
민주당측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지난달 민주당측 요청을 받아들여 개표보고 마감시한을 연장하고 수작업 재검표를 인정했던 만큼 이같은 결정을 재심하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자신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그래도 승소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특히 리언 카운티 순회법원이 4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등의 무효표 1만3000여장에 대한 수작업 재검표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것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통상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에 법률 해석상의 오류가 있었는지 여부만을 살피고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하급심에 맡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고민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의 대책에 모아진다.
악화된 여론을 고려할 때 고어 후보가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일각에선 세미놀 카운티 등의 부재자 투표 무효소송에 대한 주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는 포기해선 안된다고 주장해 아직 확실한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다.
한편 부시 후보는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재심리를 중계하는 TV방송을 시청하지 않았다. 차기 행정부의 주요 인사 인선(人選) 구상 등 정권인수 준비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만에 하나 플로리다주 사법부가 고어 후보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경우에 대비, 자신들이 지배하는 플로리다주 의회를 통한 독자적인 선거인단 선출 작업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기로 했다.
선거인단 선출 방법은 전적으로 주 의회의 권한이므로 실제 투표결과에 상관 없이 부시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인단을 선출해도 법적으론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게 공화당의 분석. 민주당의 반발이 다소 우려되지만 끝없는 법정공방에 지친 여론은 결국 공화당 편을 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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