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등학생인 큰딸 앞으로 일본의 한 회사에서 작은 소포가 하나 왔다. 소포를 보더니 딸은 금방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내가 이겼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며 기뻐했다. 소포를 뜯어보니 그 속에는 정중한 사과편지와 함께 컬러펜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일전에 내가 일본에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딸이 갖고 싶어하던 컬러펜 한 다스를 선물로 사다주었는데 그 중에서 초록색 펜이 본래의 색깔대로 나오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최근 3년반 동안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소비자의 의무와 소비자의 권리가 통하는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당연히 항의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한 자루에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인데 다음에 출장가면 하나 더 사다 주겠다”며 달랬다. 하지만 딸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컬러펜 회사의 주소를 찾아낸 뒤 불량펜과 함께 영어로 쓴 항의편지를 보낸 것이다.
소포는 펜 회사의 애프터서비스부서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잘못된 한 자루의 컬러펜에 대한 보상으로 왜 두 자루를 보냈을까? 아마 한 자루는 본래의 잘못된 것에 대해 마땅히 교환해 준다는 의미로, 다른 한 자루는 소비자가 불편을 겪은 데 대한 사과의 뜻으로 보낸 것으로 추측한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우선, 배상책임 등 애프터서비스가 확실하고 신뢰감을 주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과를 받은 딸애는 평생 그 회사를 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자기 경험을 주위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구전 효과가 클 것임에 틀림없다. 즉, 고객 스스로가 빅마우스(Big Mouth)가 되어 저절로 홍보될 수 있도록 하는 고객감동 경영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다음은 N세대를 맞이할 준비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N세대의 소비 형태에 대비한 준비를 확실히 해둬야 한다.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광고 및 홍보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자사 제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도 하지만 반면에 소비자가 쉽게 클레임을 제기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리고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큰애는 평소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영어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는 미국생활을 통해 영어 구사력에 자신감을 얻었기에 가능하다. 어른인 나는 한국말로 항의할 자신은 있으나 영어로 항의편지를 쓰려면 실력이 탄로날까 봐 두려운 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가정교육과 사회시스템이 결합돼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딸이 항의편지를 쓰겠다고 하면 부모가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한번 해보렴”하고 격려하면서 좋은 방법이라고 칭찬해 줘야 하는데, 나는 잠시나마 ‘해봐야 쓸데없을걸’ 하고 생각한 것을 반성한다.
학교에서는 옳지 않은 것을 보면 항의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부모인 나는 적당주의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것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통하도록 세심하게 살펴주는 가정교육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오경수(시큐아이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