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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김용택]힘 불끈 솟게하는 詩語들

입력 | 2000-12-08 18:47:00


◇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시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시인은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밤하늘의 별이 어떻다는 것이며, 풀잎에 스치는 바람은 또 어떻다는 것인가? 하얀 달밤으로 복잡하고 골치아픈 우리들의 괴로운 삶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시는, 시인은 그렇게 한푼도 되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감동하고, 행복해 하며, 때로 시를 읽는 사람에게 삶의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우리 손에 뚜렷이 잡히는 물질만으로 행복하다면 그런 세상은 끔찍하리라. 흘러가는 시냇물이, 허공을 내려오는 흰 눈송이가 1원어치도 안되겠지만 시인의 눈을 통해서 그 눈송이는 사람들에게 억만금 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시는 때로 꽉 막힌 삶을 뚫어주는 한 가닥 숨통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시집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창작과 비평사, 신경림 엮음)를 읽는 동안 나는 온갖 생각에 빠져들었다. 고은의 시 ‘문의 마을에 가서’중 “문득 팔짱끼고 서서 견디노라면/ 먼 산이 너무 가깝다”는 시구절을 읽으며 누가 숨을 골라 쉬지 않겠는가.

신경림의 ‘파장’이나 이성부의 ‘봄’을 읽으며 그 누가 이제는 그리워지기까지 저 80년대를 떠올리지 않으랴. 아, 황동규의 시들은 내게 너무나 아련하다. 내 생에 가장 외롭고, 춥고, 그리고 눈 많은 그 겨울, 황동규는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조그만 사랑노래’는 지금 읽어도 내겐 눈물이다.

조태일 최하림 정희성 김광규 양성우 문병란 오규원 김지하 정호승 곽재구를 지나 안도현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을 것 같은 그이들의 이름만 어디에서 보아도 두 눈이 환해지던 날들이 내겐 있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황지우, 그리고 ‘학살’의 김남주, ‘철길’의 김정환이 내 마음에 크고 튼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모두 건강하고 헌걸 찬 시인들이다. 그 무렵 박노해의 ‘시다의 꿈’을 읽으며 몸을 부르르 떨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시의 시대는 갔느니, 시의 위기니 하기도 한다. 시의 위기라는 말이 지금 우리 삶을 불안하게 하는 경제의 위기라는 말하고 그 쓰임이 같은 말인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시집은 고은에서 시작되어 정복여의 ‘귀가’까지 89편의 시가 담겨져 있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의 위기는 시인들 자신의 위기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시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은 시인들의 말이다. 시인의 위기가 시의 위기를 부른다.

시인들이여 어디를 헤매는가. 세상의 막힌 숨통을 뚫는 길목에 시인은 서 있어야 한다. 탁한 공기를 가르는 한 줄기 바람이어야 한다. 탄산 음료들이 산 같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진짜로 샘물이 필요없는가?

김용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