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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신간]치밀한 주석…15년만에 완성

입력 | 2000-12-08 18:47:00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중국 후한(後漢) 말에서 동진(東晉) 말까지 약 200년간 실존했던 제왕 고관 문인 학자 스님 부녀자 등 700여 명에 이르는 인물들의 독특한 언행과 일화를 수록해 놓은 고사 모음집이다. 문학 예술 정치 학술 사상 역사 사회상 인생관 등 인간사 전반을 담고 있어 당시의 중국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독서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폭넓은 배경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친절한 주석이 필요하다.

이번에 이 책의 꼼꼼한 역주본을 낸 사람은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김장환 교수. 그는 1996년 역주본 상권을 낸 지 5년만에, 석사학위논문을 쓰면서 ‘세설신어’에 관심을 가진 때부터 따지자면 15년만에 역주를 완성한 셈이다. 1130가지 이야기가 담긴 이 ‘세설신어’는 정확한 번역과 치밀한 주석으로 유명한 건국대 중어중문학과 임동석 교수조차 선역본(選譯本)만 냈을 만큼 방대한 분량이다.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번역을 경시하는 학계의 풍토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저라도 일단 논문을 쓴 원전자료는 완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김 교수는 이미 1985년에 석사학위논문 ‘세설신어 연구’를 쓴 후 이를 단행본으로 묶어 낸 전문가인 만큼 이번 역주본에는 김 교수 자신의 주석도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한다.

중국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에 송(宋)나라의 대표적 문인이었던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찬하고 양(梁)나라의 학자인 유효표(劉孝標·462∼521)가 주석을 단 이 주석본의 완역은 전 세계적으로도 일본(1975∼1977)과 미국(1976)에만 돼 있을 뿐이다.

‘세설신어’에는 한나라 동중서(董仲舒)의 유학 체계가 무너지고 도교와 불교가 광범위하게 전파되던 정권 교체기에 권력 투쟁이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정권에 협조하기를 거부하거나 몸을 보전하기 위해 은거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을 멀리 했던 이들의 사상은 우리나라 청담(淸談)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김 교수의 ‘세설신어’ 역주본은 중문학을 하는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청담문학을 연구하는 국문학자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

김 교수는 이밖에도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등 적지 않은 역주본을 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한국인으로서 정작 한국의 자료에는 손을 못 대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문헌만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젊을 때 실력을 닦아 나중에는 우리나라 문헌을 역주할 계획입니다.”

김 교수는 ‘중국필기문헌연구소’를 만들어 대학원생 및 박사급 연구자들과 중국고전의 역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주에 방대한 ‘태평광기(太平廣記)’ 역주본 제1권을 내놓는다. 총 21권 중 첫째 권이다.

▽유의경 지음/유효표 주/김장환 역주/상 374쪽 1만5000원/중 471쪽 1만 8000원/하 799쪽 2만5000원/살림▽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