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이슈부 서영아기자가 쓴 ‘여기자가 본 백지영비디오’를 ‘메트로(Metro)’면에 실었다. 여가수 백지영씨의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인권의 입장에서 짚은 글이다.
서기자에게 300여통의 E메일이 쇄도했다. 뜨거운 찬반논란이었다. 여기서는 비판론 중 일부 색다른 것만 보자. 반대론에는 대체로 ‘인권에 대한 시각에는 동의하지만…’의 전제가 붙어 있었다.
“직업을 떠나 옆집 아가씨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이사했을 거예요. 가수 누가 어떻게 한 게 문제가 아니고 도덕적 관념에서, 딸자식을 키우는 교육적 관점에서 보고 듣고 말할 뿐이오. 여긴 유럽이 아닌 한국이잖소. 처녀가 결혼 전에 성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오이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자식을 키우고 손자도 보는 나이가 되면 깨닫게 될 것이오.”(yoonbyul)
“혼전순결은 물 건너간, 시대착오적 이야기가 된 건가요. 순결교육으로 일관한다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성교육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누가 그랬죠. 자라는 아이들의 머리는 스펀지 같다고….”(bigcake)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다. 가족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까.”(영문메일·jint2)
필자는 개인적으로 연예인을 공인(公人)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사생활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현실적으로는 연예인의 본질적 기능인 엔터테인먼트 제공 차원을 넘어 교육적 잣대로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백씨에겐 ‘죄’가 없다. 또 인권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사건이 대중스타가 우리 사회의 어젠더를 설정하는 엄청난 기능을 갖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켰다는 점에 주목한다. ‘백지영 비디오’를 통해 인권문제가 부각됐고 시대적 상황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순결교육론’이 떠올랐다. 성 상납고리, 집단관음증, 사이버공간의 폭력, 이혼율 증가와 가정해체 등 수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부각된 것이다. 린다 김의 ‘성로비’ 논란, ‘위계에 의한…’이란 수식이 붙을 수 있는 클린턴―르윈스키 사건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독자들의 E메일 가운데 자녀를 둔 부모, 특히 딸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보내온 글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백지영 비디오를 ‘즐기기 위해’ 보았다. 그 주인공은 기성세대의 아들딸이었다. 이 비디오를 보고 ‘내 아들, 내 딸’이란 생각이 든 어른들은 입을 다문다. 필자의 친구들도 그렇다. 성개방을 떠들면서도 ‘내 자식’의 덫에 걸리면 달라진다. 이것이 우리의 본심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최근 청소년 성교육은 생리주기, 피임, 성병예방, 성폭행예방법 등 기능적인 것에 치우친 듯하다. ‘현실적 방안’이었을 수 있다. 이 와중에 적어도 조선시대 이후 600년간 선조들이 옳다고 믿어온 주요가치관인 ‘순결 이데올로기’는 설 땅을 잃었다.
성의 완전개방을 전제로 ‘성감 높이기’를 포함한 기능교육을 할 것인가, 성에 관한 가치교육을 ‘적어도 병행’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홍호표hp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