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그러나 20세기 전후반에 걸친 전쟁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범죄는 법의 심판 아래 처벌된 적이 없다.
▼反인도적 행위 法심판 당연▼
가장 조직적이고 악랄한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였던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는 도쿄(東京)군사재판에서도 취급되지 않았다. 당시 미군은 일본을 미군 지휘하에 무난히 통합하기 위해 전범인 히로히토(裕仁)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만들었고 위안부에 대한 기록과 문서보고가 있었는데도 처벌 요청을 묵살했다.
8일부터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국제전범법정’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과거 도쿄군사재판에서 제외된 식민지 국민과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 법적 판결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이 법정은 아시아 지역의 민간단체들이 주최하는 민간법정이지만 위안부 문제를 재판하는 최초의 법정이어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첫번째 기소국인 남북한 양측(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은 이번 법정에서 공동으로 히로히토 천황과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2차대전 당시 총리 겸 육군대신 등 8명을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로 기소했다. 또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국제인도법과 노예무역 금지에 관한 국제조약,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조약 등을 위반한 책임을 물었다.
피고인들이 일본군 위안소 정책의 수립과 시행,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연행, 강간 고문 상해 노예화 학대 등 위안소에서 자행된 범죄에 연루됐다는 사실은 이미 공개된 자료나 일본정부 기록문서에도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국제법에서는 행정기관 등의 잘못에 대해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인도적 범죄 등 최근 발전된 국제형사법을 과거 행위에 소급해 적용할 수 없다는 등의 논리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역사교과서 개정 움직임을 통해 전쟁 책임을 최대한 축소, 왜곡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결국 전쟁범죄는 처벌돼야 하며 특히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시효도 없는 전쟁범죄라는 것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이 법정의 북한측 검사단으로 참가한 정남용 상무위원은 “살아 있건 죽었건 전쟁범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법적 실례를 남겨야 과거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지금도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근절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이번 여성국제전범법정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과거의 전쟁범죄를 재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평화를 보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12일로 예정된 판결은 전시 성폭력을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하기 시작한 국제법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90년대 들어 국제법은 그 흐름이 크게 달라졌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전대통령이 기소된 것은 ‘반인도적 범죄’의 추궁이 국가 주권에 우선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전시에 자행된 강간 강제매춘 성노예제도도 반인도적 범죄로 재판받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93년에 열린 유고전범 법정이다. 유고 내전에서 저지른 개인의 전쟁책임을 재판한 이 법정에서는 보스니아 남부에서 여성들을 감금하고 강간한 세르비아계 무장조직의 하급사령관이 노예화나 강간 범죄로 기소됐다. 또 94년 르완다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재판한 국제법정에서도 마을 대표가 집단강간을 포함한 대량 학살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죽은자도 단죄해야 재발막아▼
98년에 채택된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 조약에는 전시 성폭력이 반인도적 범죄로 명시돼 있다. 이는 특정 지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는 보편적 기준으로 전시 성폭력을 재판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번 도쿄 여성국제전범 법정은 전쟁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성폭력도 국제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지금까지 자행돼온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반성과 보상을 촉구하고 세계평화에 대한 염원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윤옥(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