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알파레타에 본점을 두고 있는 넷뱅크는 점포나 현금지급기(ATM)가 하나도 없는 무점포 은행 이다. 이 은행은 96년 8월 설립된 후 이듬해부터 바로 흑자로 돌아섰고 매년 5배 이상의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넷뱅크는 미국 금융기관의 입출금식 예금 금리의 3배가 넘는 3%대의 고 금리를 지급한다. 저축성 예금이나 현금성 양도증서(CD) 금리도 다른 은행의 2∼3배 수준.
일반 은행의 경우 영업점을 직접 찾아가 거래하면 송금이나 계좌이체를 할 때 평균 1달러 44센트의 수수료를 물게 되고 전화를 이용할 경우 54센트를 수수료로 내야한다. 이에 비해 넷뱅크의 수수료는 불과 4센트에 불과하다.
점포가 없기 때문에 객장에서 손님을 맞는 직원들의 인건비가 안든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지점망을 연결하는 별도의 통신망을 구축할 필요도 없고 마케팅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영 활동을 아웃소싱해 비용을 철저하게 줄이고 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금융 산업에서도 빅뱅 이라고 부를 만한 혁명적인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 무점포 은행이 등장하는가 하면 기존의 대형 은행들도 앞다퉈 인터넷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씨티그룹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20억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인터넷 뱅킹 분야에 쏟아 붓고 있다. 도이체방크도 E밀레니엄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핀란드 노키아나 독일의 만네스만 등 비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애초부터 유형의 상품이 없는 금융 서비스는 인터넷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디지털 상품 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터넷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혀 새로운 금융 상품이 나오고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 체계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외 증권가에서도 사이버 거래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수수료 인하 경쟁이 한창이다. 지난해 10월 주식매매 수수료가 자유화된 일본에선 대규모 증권사인 노무라(野村)증권과 다이와(大和)증권이 27% 가량 수수료를 낮춘 반면 온라인 증권사인 DLJ다이렉트는 97.6%, 이트레이드는 70% 가량 수수료를 낮춰 버렸다.
온라인 증권사에서 이런 가격 파괴 가능한 것도 넷뱅크처럼 인터넷 혁명이 몰고온 구조적 변화 덕분이다. 부즈 앨런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사원을 둔 지점에서의 거래 비용이 건당 평균 6달러인 반면 인터넷을 통할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뱅킹이나 사이버 주식 거래는 날로 확산되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뱅킹 이용자는 9월말 현재 20개은행에 26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말 12만명, 올해 6월말 123만명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조회나 자금이체, 대출 이용건수도 월 2000만건에 이르고 있다. 데이 트레이더의 천국 이라 불릴 만큼 사이버 주식 거래의 비중도 높다.
미국의 컨설팅펌인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 고객들의 온라인 금융 서비스 이용률은 전체의 45% 수준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뱅킹이 등장했던 초창기에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터넷 은행들은 초창기에 장차 독자적인 은행으로 성장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업무가 축소돼 모(母)은행 산하의 한 사업 부문으로 흡수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 보도했다.
인터넷 뱅킹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신뢰성과 프라이버시 문제다. 은행 이용자들이 온라인 거래 자체를 불안해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거래 내역을 훤히 들여다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서버가 장애를 일으켜 아예 접속이 안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있는 점도 인터넷 뱅킹을 꺼리게 된다.
일본에서도 증권사들의 수수료 경쟁이 과열되면서 처음에 수수료에 좌우되던 고객들이 점차 어떤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지, 정보는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에 따라 증권사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오프라인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유서 깊은 증권사들이 초기의 열세를 딛고 다시 전면에 나서고 있다. 오랜 시간 연구소에 축적된 데이터와 전문가들을 내세워 현재 주가와 시황 리포트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금융기관이 단순히 기존의 서비스 채널을 온라인화하는 데 그친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 뱅크인 영국 에그뱅크의 케이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98년 10월 영국 프루덴셜이 설립한 에그뱅크는 임직원이 1500명에 불과한 초소형 은행이지만 경쟁 은행보다 1.5∼2.0%포인트 높은 예금 금리와 5∼8%포인트 낮은 신용카드 대출금리를 앞세워 출범 1년만에 70만명의 예금자에 70억파운드의 수신고를 확보하는 기록을 세웠다. 같은 기간 영국 전체 수신 증가의 22%에 이르는 액수다.
이 은행의 주 수입원은 다른 은행처럼 예대 마진이 아니라 펀드나 보험 등 다른 상품의 판매 수수료와 광고. 예대 업무에선 수익이 극히 적거나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 은행이라고는 하지만 예금이나 대출 서비스는 단지 손님을 끌기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smhong@donga.com
▼ 전문가기고 ▼
불과 2∼3년전 미국 등지에서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파이낸스가 확산될 무렵만 해도 금융 전문가들은 비용 절감이나 편의성 등 인터넷 금융 거래의 장점들을 강조하면서 온라인 금융기관들이 오프라인 금융기관의 생존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온라인 금융기관들이 5년내에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이버파이낸스는 전자화된 매체에 의한 금융서비스의 제공과 지급 결제 기능의 수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금융 서비스는 대표적인 디지털 상품으로 인터넷을 통할 경우 비용 절감, 정보접근의 용이성, 거래의 신속성과 편리성이라는 장점을 갖게 된다.
금융 산업의 속성상 사이버 파이낸스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려면 보안과 신뢰의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금융기관에게 새로운 이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산업내 경쟁을 심화시키는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이버 파이낸스는 금융기관의 역할도 변화시키고 있다. 즉 단순한 금융거래 중개 기능에서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다양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산업혁명 이후 생산 체제가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양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변한 것처럼 금융기관의 역할 역시 다양한 투자자의 금융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보안과 신뢰성 문제가 해결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기관의 단순 중개기능은 최소화하고 경제 주체간의 다양한 필요성을 조정하는 기능이 주 기능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온라인 금융기관들은 어떤가. 인터넷뱅크 가운데 SFNB는 98년 로열 뱅크 캐나다 그룹에, 텔레뱅크는 올해 1월 e트레이드에 인수됐다.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는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지만 투자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리서치 능력은 다소 뒤쳐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온라인 금융기관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거래중개 업무의 서비스 전달 채널을 온라인화했기 때문이다. 변화된 금융기관의 기능에 대한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인준 KAIST테크노경영대학원 금융공학 전공 책임 교수
ijkim@kgsm.kaist.ac.kr
아=김인준교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