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이재한 감독은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12살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15살 때 첫 단편을 제작했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좋아한 나머지 그의 모교인 뉴욕대 영화학과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40여편의 단편영화, 뮤직비디오 등을 만들었다. 일찌감치 `끼'를 드러낸 `할리우드 키드'인 셈.
이번에 국내에 선보이는 영화는 그가 미국에서 만든 장편 데뷔작「컷 런스 딥」.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뉴욕 제작사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지난 97년 한국의 알부스 필름과 인연이 닿아 제작에 착수했으나 IMF 여파로 제작사의 현지법인이 철수하면서 일신창업투자가 후반작업 지원을 떠맡아 지난해 10월에서야 완성될 수 있었기 때문.
「컷 런스 딥」은 뉴욕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국인 2세들이 겪는 좌절과 방황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모든 상처는 내 기억에서 출발한다'는 감독의 말처럼 한국인이면서 미국에서 자란 감독에게 이런 화두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갱이 되고, 망가지고, 그러다 죽는다. 이 영화는 그들의 상처와 상실에 대한 영화다." 감독의 연출의 변이다.
헝가리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중국집 배달원 `벤'(알렉스 매닝 분)은 우연히 갱들의 소굴로 배달을 나갔다가 그 곳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정체불명의 수배자'라는 뜻의 `J.D.'(데이빗 맥기니스)는 혼자서 마을 사람들을 처치해 갱들 사이에서 우상으로 꼽히는 존재. 그러나 폭력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상대편 우두머리를 살해해 자신의 조직이 습격을 받도록 한다.
총과 주먹만이 정직하게 말하는 폭력세계에서 위안을 찾는 한국인 2세들의 모습이 음울하면서도 과장되지 않게 그려져 있다.
그런 면에서 마티유 카쇼비츠의 「증오」, 대니 보일의「트레인 스포팅」, 프루트 첸의「메이드 인 홍콩」등 90년대 후반 새롭게 떠오르는 젊음과 폭력, 방황에 관한 화두를 안고 있는 작품들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이 점은 곧 약점이 될 것 같다. 이 모든 영화들을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
배우들의 면면이 눈에 띈다. 파리 출신으로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벤'역의 알렉스 매닝은 미국 패션계에 주목받는 모델. 키아누 리브스와 톰 크루즈를 섞어 놓은 듯한 외모를 자랑한다. `JD'역의 데이빗 맥기니스는 독일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아로 이 작품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연합뉴스=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