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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세상]"그래도 내사랑"

입력 | 2000-12-12 19:03:00


꾸벅꾸벅 졸다 앙칼진 아줌마 목소리에 선잠을 깼다.

며칠전 O시가 다 된 시각, 의정부행 서울지하철 1호선. 젖먹이 딸을 업은 젊은 여자가 술에 취한 남루한 행색의 남편을 향해 ‘따발총’을 놓고 있었다.

“정신이 있어요? 그게 어떤 돈인데….”

“10만원밖에 안돼.”

“그게 적은 돈이에요? 꼴도 보기 싫으니 저리 가요.” “…….”

풀이 죽은 남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두어 걸음 옮겨 섰다. 가끔씩 귀여워 못견디겠다는 듯 엄마 등에 업힌 딸에게 “까꿍”하며 눈웃음을 쳤지만 그 때마다 날카로운 핀잔이 날아왔다.

“친구들에게 하는 것의 10분의 1만 가족한테 해봐. 그래도 아빠라고 쯧쯧쯧.”

보다 못한 학생 몇몇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부인은 멈추지 않는다.

모두들 민망해하는 순간.

‘초라한 가장’은 용기를 낸다. “여보 잘못했어”라고 너스레를 떨며 옆자리에 털썩 걸터앉는다.

부인은 미워죽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다 ‘졌다’는 표정을 짓더니 슬그머니 남편의 손을 잡았다.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