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재잘대며 교실로 들어가는 어린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순간 목젖이 팽팽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국기 게양대 옆자리에 우뚝 서있는 ‘반공소년 이승복’의 동상 때문이었다.
1968년 12월 당시 ‘북괴 무장간첩’들이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한 어린이와 무고한 양민에게 저지른 만행에 우리는 “천인공노할 일”이라며 분개했다. 철천지한을 다짐하기 위해 기념관을 짓고 ‘반공소년 이승복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교육당국은 반공 멸공교육을 더욱 강화했고 초등학교들은 앞다퉈 이승복 동상을 세우느라 부산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였고 씻을 수 없는 민족의 아픔이고 상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초등학교 교정에 서있는 이승복 동상은 남북화해라는 시대적 변화와는 동떨어진 교육현장의 한 단면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승복의 실체를 시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지금은 ‘이승복 이데올로기’를 부지불식간에 강요해 어린이들을 혼란스럽게 할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속적인 햇볕정책으로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김대통령과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웃는 얼굴로 악수하는 장면이 교과서에 실리게 된 마당이다. 북한가요와 민요를 통일학습 자료로 활용하려고 서둘러 CD롬으로 제작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남북이 적대적 대치에서 화해와 포용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교육현장도 변해야 마땅하다. 어린이들은 이승복 동상을 바라보며 얼마나 혼란스러워 할까. 초등학교는 나무 한 그루 조형물 하나에도 어린이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정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물론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념물로 남겨두기를 고집한다면 그 주장도 전혀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교육당국은 서둘러 이 문제를 검토하고 넘어가야 한다. 새천년의 첫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시기인 만큼 마냥 방치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기경(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