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즐겨 먹던 바나나 우유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로 시작하는 TV 만화영화「캔디」,그리고 서커스 극단...
국내 영화 배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시네마서비스가 올해 첫 프로젝트로 제작한「불후의 명작」은 지극히 옛 정서에 기대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초인'이 등장하거나 아니면 인간은 온데간데 없고 넘쳐나는 특수효과와 물량공세로만 무장한 요즘 주류 영화들에 아예 작정하고 반기를 든 셈.
외딴 산골로 놀러갔다가 차가 고장나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야 하는 연인들의 낯익은 에피소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신파조 삼각관계도 그래서 빠뜨리지 않았다.
인기(박중훈 분)는 유학파지만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로 비디오를 찍는 순박한 마음을 지닌 감독. 지금은 「마님 사정 볼 것 없다」「박아사탕」같은 `벗기는' 영화들을 찍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겠다는꿈이 있다.
여경(송윤아)은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을 써주는 대필작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한 번도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조만간 자신의 이름이 찍힌 소설집을 내겠다는 야망이 있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시키면서 애틋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지만 뒤늦게 인기는 여경이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각박한 영화계 현실 때문에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직접 영화로 만들지 못하고 선배에게 물려주게 되자 인기는 울부짖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만이 사실은 인생에서 불후의명작을 만들 수 있다" 심광진 감독의 말이다.
냇가에 앉아 있는 두 남녀 사이로 반딧불이 반짝이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사랑했지만 바라만 봐야 했던 당신'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흐른다. 감독은 조금 `못난' 두 남녀를 내세워 옛 정서를 공략하는 `촌스러운'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이 훈훈해지는 인간미보다 진부함과 지루함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저마다 제가 잘났다고 우겨대고 이해관계가 똑 부러지는 요즘 세상에 영화 속 남녀의 모습은 오히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닐는지.
특히 감독의 희망에 관한 집중적인 메시지는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느껴질 정도로 직접적이다.
깔끔한 영상과 함께 펼쳐지는 세련된 연애담에 익숙한 20-30대 주관객층에게「불후의 명작」이 과연 `명작'으로 남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영화 속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서커스 단장 딸을 사랑하는 피에로가 망해 가는 서커스단을 살리기 위해 공중 묘기에 도전한다는 동화같은 시나리오가 재현돼 극 중간중간 삽입됐다.
또 배우 신현준이 극중 인기배우로 깜짝 출연해 실제로는 대선배인 박중훈 앞에서 힘을 주는 장면이나 영화 제목을 재치있게 패러디한 에로 비디오 제목들은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 1년 6개월만에 스크린에 출연하는 박중훈이 모처럼 `에너지를 빼고' 멜로 연기를 펼쳤고, 본격적으로 충무로에 입성한 탤런트 송윤아가 아픔을 간직한 여경 역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23일 개봉.
[연합뉴스=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