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첫해 한국영화는 무한성장 가능성을 예고하면서 확실한 도약의 기반을 다지는 등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
충무로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를 딛고 지난해 잠재력을 회복한 영화계는 올해도 대외경쟁력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영화의 미래에 청신호를 울렸다.
99년, 2000년 두 해 연거푸 30%대를 웃돈 한국영화 시장점유율과 올해 처음으로 60여편에 육박한 제작편수만 보더라도 중흥기에 접어든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지난해 「쉬리」의 흥행대박에 힘입어 35.8%를 기록한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20%대에 머물렀으나, 하반기 들어 「쉬리」의 흥행기록을 바짝 뒤쫓고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세로 단박에 32.9%(12월3일 기준)로 뛰어올랐다.
도저히 넘기 힘든 산처럼 보였던 「쉬리」의 경이적인 관객동원기록(서울관객 243만명)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남북 화해무드를 등에 업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몰이에 떠밀려 곧 깨질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한국영화의 제작기반이 한층 단단해졌다는 반증에 다름아니다.
충무로 제작환경에 일대 변화를 예고한 남측 영화인들의 단체방북이 지난 11월 처음으로 성사된 것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한반도 화해기류 덕택임은 물론이다.
「단적비연수」「리베라 메」등 45억원 가량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들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
이런 제작비의 수직상승은 한국영화와 영화시장의 규모를 전례없이 확대시켜 놓았으나 `할리우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화인들의 `문화적 허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무려 35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싸이렌」의 흥행참패는 이런 분석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해외영화계에서 한국영화가 호평을 받은 것도 올해 두드러진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본선경쟁부문에 진출해 세계영화인들의 관심을 끈 것을 비롯해 「박하사탕」 「오! 수정」 「해피엔드」 「섬」등이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을 포함해 외국 유수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돼 해외진출의 전망을 밝게 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러시아 등에 진출한 「쉬리」가 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면서 현지 관객들의 비상한 관심을 끈 것도 마찬가지.
이같은 해외시장의 호응 덕택에 한국영화는 장편 32편, 단편 6편 등에 대한 수출계약을 마쳐 698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일본대중문화 3차 개방조치로 일본영화가 대거 쏟아져 들어온 것도 예년과 다른 충무로 풍속도의 하나. 지난해 불과 4편에 불과했던 일본영화가 올해는 23편으로 늘어나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뛰어오른 7.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낯익은 중견감독에 비해 신인감독들의 활약상도 눈에 띈 한해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완 감독이 저예산 영화 1편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는가 하면「단적비연수」의 박제현, 「동감」의 김정권, 「인터뷰」의 변혁 감독 등이 관객들과 `눈높이'를 맞춘 신인들이다.
여기에다 올 영화배급의 강자로 CJ엔터테인먼트가 급부상함에 따라 영화시장을 좌우하는 배급망이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양대축으로 재편될 만큼 영화시장이 요동을 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국내영화 배급망이 이들 두 회사 외에 1개사 정도가 더 부상해 삼각구도로 정립(鼎立)하면 한국영화의 안정화를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충무로의 환경 자체가 한국영화 성장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 한국영화의 미래가 밝은 것이 사실이나 한편으로는 불과 몇 작품의 흥행에 기댄 `양적(量的) 성장'을 이룬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연합뉴스=이명조 기자] mingjo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