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벤처위기가 가속화되면서 벤처기업에 투자해 주겠다며 자금을 끌어 모았던 속칭 ‘금융 피라미드’ 피해자가 늘고 있다.
금융피라미드란 수익률이 높은 벤처회사에 투자해 그 주식과 배당금으로 월 3∼15%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집하는 금융회사.
그러나 이들 회사는 신규 투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쓰러지기 때문에 ‘모래성’인 경우가 대부분. 투자금을 유치해 오면 별도 수당을 주는 다단계 방식으로 운영한다.
▼죄책감 시달리다 목메▼
▽피해 사례〓과일도매상인 J씨(58)는 지난해 12월 벤처투자회사 ‘L트러스트’에 8000만원을 투자했다. J씨는 전망이 좋은 벤처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려주겠다는 말을 믿고 결혼한 딸과 친구들에게까지 돈을 빌렸다. 실제로 매월 꼬박꼬박 투자금의 10%씩 이자가 들어오자 신이 난 그는 올 4월엔 친척들을 설득해 신규 투자금 4억여원을 모았다. 그 공로로 J씨는 투자금의 5%에 해당하는 커미션과 ‘부장’자리까지 얻었다.
그러나 L사는 한달 후인 5월 갑자기 문을 닫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무실을 구해 호화인테리어를 해놓고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던 L사의 경영진이 갑자기 잠적하면서 J씨는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이 투자한 돈은 고사하고 자신 때문에 돈을 날린 친인척 투자자들의 전화와 항의에 밤낮으로 시달린 그는 결국 6월 목을 매 숨졌다.
주부 C씨(47)는 4월 대기업 간부였던 남편이 명예퇴직 압력을 받자 남편 사업자금이나 마련해 볼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모은 4000여만원을 ‘S엔젤사’가 추천하는 ‘신온돌시스템’ 회사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난달 말 경찰조사결과 부산의 폭력배 조직이 세운 유령회사로 드러났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C씨는 “돈도 돈이지만 가족들의 냉대에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통곡했다.
▽악질수법과 수사〓금융피라미드 사기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연달아 터졌던 파이낸스사 사기와 방법은 유사하지만 훨씬 악질적인 수법을 쓴다는 게 수사기관의 지적이다.
▼법원 "피해자도 30% 책임"▼
둘 다 정규 금융기관 금리보다 높은 이율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유혹하는 점은 같지만 파이낸스사가 투자자 본인의 피해로 끝나는 반면 금융피라미드 회사는 다른 투자자를 모집해오게 해 제2, 제3의 피해자를 낸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금융피라미드 사건은 435건으로 하루 1건 이상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이 개설한 사이비 금융회사 감별 사이트(www.fss.or.kr)에는 개설(10월9일) 두달 만에 무려 23만여명이 접속해 이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우려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은 최근 대형 금융피라미드 사기피해가 속속 불거지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신규 투자자를 모으면 투자액의 20∼40%를 수당으로 주겠다’며 투자자 수천명을 모은 후 무려 60여억원을 챙겨 달아났던 경인엔젤조합장 이모씨(55)등 3명을 유사금융법위반으로 구속했다.
11일에는 부산에서 월 15%의 이자를 준다며 2000여명에게 243억원을 받아 챙긴 사기조직이 적발됐다.
경찰 관계자는 “금융피라미드 사기사건은 벤처신화가 붕괴되기 시작한 올해 중반기 이후 빈번하게 터져 서민을 울리고 있다”며 “피해 신고는 많은데 해당회사에 가보면 피의자들은 이미 달아나고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원은 최근 금융피라미드 피해자에 대해 원금의 70%만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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