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힘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맡을 것이 유력한 콘돌리자 라이스(조지 W 부시 대통령당선자의 외교안보고문)는 8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이 추구하는 대외정책을 이렇게 요약했다.
20세기말 사회주의 블록의 몰락 이후 유일하게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이 21세기에도 국제사회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를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국의 힘, 특히 군사력이 대외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81년 초부터 93년 초까지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대통령의 공화당 정권이 12년간 취했던 대외정책의 기본 노선이기도 하다. 공화당은 이같은 정책이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이끌어 냈다고 자부한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상대로 걸프전을 벌여 전세계에 미국의 힘을 과시한 것도 이에 따른 것.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13일 “부시 행정부의 출범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유화적인 외교 안보 정책이 레이건과 부시 전대통령 시절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미국의 대외정책이 현재보다는 강성을 띠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미국의 국익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익 추구를 위한 대외 정책의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이를 추구해나가는 전술 등 정책적 기조에는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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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정책 공화당 기본노선▼
부시 당선자는 실제로 유세 과정에서 “클린턴 행정부 8년을 통해 미국의 군사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고 비판하며 국방력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강조해 왔다.
부통령 당선자인 딕 체니와 국무장관이 유력한 콜린 파월이 걸프전 당시 각각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차기 행정부가 지향하는 대외정책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의 힘을 내세우는 외교 안보정책은 불가피하게 다른 국가들과 마찰을 일으킬 소지를 안게 된다.
부시 당선자가 “외국의 공격과 협박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구축하겠다”고 공약한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만 해도 러시아 중국과의 갈등을 촉발할 개연성이 높다.
미국이 NMD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선 72년 구소련과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을 개정해야만 하는데 러시아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시 당선자는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약을 지킬 때가 아니라 미국인을 보호해야 할 때”라고 말해 ABM 협정의 개정이 여의치 않으면 아예 이를 파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도 미국이 NMD를 추진하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한다는 명분 하에 사실상 중국을 염두에 둔 군사력 증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한 것과는 달리 공화당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간주하는 것도 미―중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 물론 부시 당선자가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고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으로 군사력 강화에 매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5월 헨리 키신저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등 역대 공화당의 외교안보정책 책임자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가급적 최저 수준으로 줄이겠다”며 이를 ABM 개정에 관한 러시아와의 협상에 연계시킬 것임을 시사한 바 있기 때문이다.
부시 당선자는 또 클린턴 행정부가 코소보 소말리아 르완다사태 등 국제분쟁에 자주 개입한 것을 비판하며 미국의 해외파병은 명분이 있고 승리가 확실시될 때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 군사력 증강에도 불구하고 잦은 파병은 자제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기도 했다.
▼정통성 취약 정책추진 약점▼
워싱턴 외교가에선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의 위신이 실추되고 부시 당선자도 정통성에 취약점을 안게 돼 차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부시 당선자가 13일 승리 연설에서 “선거가 끝난 만큼 초당 외교를 펴야 한다”며 민주당의 협조를 당부한 것도 이를 의식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