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담당기자를 하며 자주 느끼는 점 중 하나는 내게 ‘메시지에 대한 강박’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분명 책과 다른 영상매체인데도 ‘말이 되는’ 줄거리와 의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집착이 떠나지 않는다.
애써 메시지를 발견하려 드는 내게 최근 ‘영화는 보는 것이다’를 실감하게 만든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Lee’다. 12일 인터넷(www.cine4m.com)에서 개봉돼 하루만에 9200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화는 “이제는 사내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게 아니냐”하는 60년대 식의 닭살 돋는 대사가 시종일관 흘러나오고 과거 액션 활극과 현대 무협영화를 코믹하게 뒤튼다. ‘오버’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유치찬란함의 극치를 통해 무게를 잡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메롱!’하듯 웃어버리는 농담같은 영화다.
엄숙주의를 벗어던진 영화의 시청각적 재미와 함께 신선한 충격처럼 다가온 것은, ‘영화를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하는 점이다. 아무 생각없이 즐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더라도 영화보기는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상영작을 고르고 누군가와 극장에 갈 약속을 정하고 지정좌석에 앉는 그 순간부터 이미 의식은 시작된다. 그러나 원하는 장소에서, 편리한 시간에 관객과 영화가 1대1로 만나는 인터넷 영화는 컴퓨터 화면의 낯선 이미지를 넘어서, 갇힌 틀 안의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방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각광받은 류승완 감독이 충무로에서였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다찌마와Lee’를 통해 아마추어적 착상과 방식으로 돌아간 것처럼, 창작자에게 인터넷 영화는 상업영화가 수용하기 어려운 발칙한 영화들을 풀어보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인터넷 영화관(www.shockwave.com)에서 상영하는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 ‘검댕 소년(Stain Boy)’에서 기괴하게 생긴 검댕 소년이 쉬지 않고 노려 보는 소녀의 눈동자를 체포하는 식의 엽기적 활약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는 보기 어려운 발상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짐 자무시같은 유럽 예술영화 감독들도 조만간 인터넷 영화 프로젝트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시도가 국내에서도 활발해진다면,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의 경계가 무너지고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에 즐거운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기대일까. 어쨌든 전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만 치달아가는 영화는 너무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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